이번 전환은 여러모로 정책이 떠돌다보니 급작스럽게, 그리고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진 감이 있습니다. 당초 서울역 북부 개량공사가 진행될 때 이 전환작업을 포함해서 했다면 지금처럼 부산스럽게 하지 않았어도 되었고, 운휴도 최소화될 수 있었을겁니다. 물론 당시에는 경강선이 서울출발인지 아닌지도 결정된바가 전혀 없었긴 했습니다마는, 어느정도 숙고를 했었다면 이런 문제는 적었을겁니다. 또한, 지금처럼 부랴부랴 최소설비로만 겨우 개통하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되었을겁니다. 10년은 커녕 1년 앞도 못내다 본 공사가 된 택이니 좀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뭐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면 이것도 상하분리의 적폐라면 적폐일거고.
역 구조는 묘하게 꼬여있는 느낌인데, 서울역 4번 승강장이 좀 특수한 공간이다 보니 정작 통로를 이어놓는데 문제가 없음에도 막아두고 빙 돌아다니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또한 구 역사 계단으로 내려가서 다시 유턴으로 돌아 가설통로로 이동해서 들어가다 보니 무슨 숨겨진 승강장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 이것도 나름의 맛이긴 하겠습니다마는... 일단 들리는 말로는 임시사용이라 그렇다고 하고, 향후에는 이쪽에 새로 소규모 역사를 신설하고 에스컬레이터와 편의시설을 신축할 계획이라고 하니 느긋하게 설비가 갖춰지기를 기다리긴 해야겠습니다.
이런점을 빼고 보면 현재의 진입로 위치는 꽤 좋은 편이기는 합니다. 과거에는 노천 개표구로이자 구 목조과선교의 진입통로가 여기였고 1982년에 지하 남부집표구를 신설해 동선개량을 하기 전까지는 여기가 서울역의 여객 동선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위치였고, 그래서 이 앞에 1호선 서울역앞 역의 주 진입로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후 민자역사 신설, 이후 KTX용 신규역사 건설로 서울역이 남쪽으로 점차 멀어지게 되면서 존재감이 옅어지긴 했지만, 개찰구 설치를 빼면 동선이 굉장히 컴팩트한지라 이전의 서부역 시절에 비할바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용산선 개통 이후 침체 기미가 강했던 경의본선 전동열차로서는 새로운 재활의 기회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물론 이 지역이 버려진 동안 모여든 노숙자들과의 마찰이 당분간은 이어지겠습니다마는.
여하간, 이리저리 꺾어 들어간 승강장 공간은 뭐랄까, 굉장히 "철분"이 넘치는 공간이라 하겠습니다. 일단 구 역사를 거쳐 진입하는 구조다 보니 옛 건물의 정취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일단 그렇게 들어간 공간은 쉽게 보기 힘든 서울과 서울역의 뒷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심지어 서울역을 출입하는 경의선 방향의 회송 및 KTX영업열차들이 느릿하게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구경하기 좋은 위치다 보니 진입로의 이미지와 겹쳐서 마치 살아있는 철도 박물관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또한 시설면에서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은데, 서울역 북부가 살짝 경사진 공간이다 보니 경의선 승강장 선로의 기울기가 살짝 다른게 눈에 띕니다. 아마 남쪽으로 3퍼밀 정도의 하구배가 있고, 경의선 승강장은 수평이라서 이런 차이가 생긴 듯 한데 사실 체감하기 힘든 부분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습니다. 또한, 선로끝의 차막이 부분 선로도 살짝 역사쪽으로 틀어져 있는데 이건 본역사쪽으로 들어가는 선로의 건축한계를 침범하는 걸 피하려고 했던걸로 보입니다. 여기에 승강장 길이가 제법 길 줄 알았는데, 막상 실제길이는 딱 5량 정도 길이밖에 안되어서 그야말로 수도권 광역전철 구간 승강장 중 가장 짧은 규격으로 지어져 있기까지 합니다. 현재 설비에서는 연장도 불가능하니 앞으로도 이건 바뀌기 힘들거라, 앞으로 지방 광역철도가 생기기 전엔 깨지기 힘든 기록이 될거 같습니다.
다만, 이런 철분명미한 풍광은 기간한정이 될 전망인데, 일단 승강장 안전문 공사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고, 또한 본 역사가 새로 통로를 내거나 하게 되면 이 광경을 다시 보기는 힘들거 같기는 합니다. 구역사의 철도역 활용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컨센서스는 있는 듯 한데, 현재의 통로 수준의 활용이라도 계속 유지가 되었으면 생각이 듭니다. 현재 공연장이나 상시전시로 쓰이는 RTO공간을 전철역처럼 대량 불특정 인원이 유동하는데 적합하도록 바꾸고, 보안시설물이나 전차선 같은 위험설비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안전설비와 편의시설물, 조명도 확보해야 할 것이며, 또한 현재 컨테이너 창고들이 방치된 하부공간도 좀 정리정돈이 필요는 할거 같긴 합니다. 시나 문화재청이 포함된 협업조직을 만들어서 여기를 어떻게 꾸밀것인지, 앞으로 또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합을 맞춰봐야 하지 않나 생각이 많이 듭니다.
P.S.:
여담이지만, 이 경의선 승강장 끄트머리에 아마 50년대쯤 지은 적벽돌 외장의 폐 철도건물이 있습니다. 지적도상에 따로 표기가 없는걸로 봐서는 이른바 대장에 없는 건물인듯 싶고, 생김새로 추정컨대 아마 전기식 선로전환기 이전에 수동 전철기와 신호기를 취급하던 신호급소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이걸 리노베이션 해서 열차전망대나 카페, 또는 홍보용 시설처럼 써보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면적이 좁고, 진입통로가 아마 승강장 끝단에서 들어가야 하는지라 영업성은 그리 좋지 못할거 같기는 합니다마는, 잘만 가꾸면 의외의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쿄에 있는 구 만세이바시역 처럼, 물론 박물관으로 쓰일만큼 대규모 역사에 비할바가 못되는 협소한 건물이긴 하지만, 구 승강장 전망대카페 같은 아이디어를 참조해서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