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영국이 코로나19로 완전히 뽕빨이 되어버린 프랜차이즈 제도의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한게 있었는데, 그 실천적인 방향이 드러났습니다. 무려 영국철도(Great Britain Railway)라는 사명을 가지는 신조직을 만들어서 운영관리와 시설을 통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걸 비꼬듯이 '그렇지만 끔찍하던 국철 샌드위치는 없습니다'라는 부제가 달리긴 했습니다만.
영국의 프랜차이즈 체제는 구 영국 국철의 민영화 과정에서 도입된 개념입니다. 러프하게 설명하자면 개별 서비스 단위로 독점 사업자를 선정하고, 이 사업자가 시설관리자에 일정한 영업료를 납부하는 조건으로, 승차권이나 영업제도를 구축하여 자기 나름의 영업노력을 수행하여 이익을 얻어내는 제도입니다. 서비스라는 개념이 좀 모호하기는 한데, 노선 전체를 독점하는게 아니라, 경부선의 일반열차, 경부선의 광역전철, 경부선을 경유하는 호남/전라선 등의 일반열차와 같은 식으로 계통과 서비스 양태가 결합된 무언가를 말하는 겁니다. 즉, 운영자는 프랜차이즈 제도 하에서 영업료를 납부하고 정부와 협의 결정한 정차역, 배차, 다이야 등의 체계 하에서 티케팅이나 마케팅 노력을 통해서 영업을 해 이익을 최대한 뽑아내도록 노력하게 만들어진 제도였습니다. 이런 틀에서 시설관리자는 독점 사업권을 영업료 입찰 형태로 운영해서, 이 사업자들이 최대한 큰 영업료(적자선이라면 최소의 마이너스 보조금 조건)를 내고 사업권을 뽑아가게 해서 시설관리비용을 뽑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체제는 그야말로 모두가 이익추구를 최대한 할테니, 보조금 괴물이라 할만하던 영국국철은 이 이익추구 노력의 결과로 이윤을 창출해내는 성공적인 산업이 될거라고 기대들을 했었습니다. 그야말로 래디컬한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욕구하던 제도로 최대한 만들어 놓았는데... 뭐 결말은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렇게 했더니, 민영이던 시설운영자는 시설유지보수비를 최대한 빼먹어서 시설이 국철시절보다 더 개판이 되었고, 각 프랜차이즈 영업회사들은 티켓 제도를 최대한 복잡하게 만들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서 체감 운임이 마구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차량을 임대형태로 굴리다 보니 사용이 굉장히 황폐해지거나, 최대한 저질 차량을 써서 굴려먹는 방향이 되면서 그야말로 난장이 되어버렸고. 이후 좀 더 제도를 정비해 시설운영자를 공영화하고, 사업권의 부여방식을 좀 더 정렬해서 빼먹기로 일관하기 어렵게 제도를 계속 땜질했는데, 이로 인해 입찰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낙찰자를 결정하는 과정이 난해해 지면서 소송사태나 사업철수가 마구 터지게 되어 정부 직영철도가 다시 생겨나는 난장이 됩니다.
이렇게 삐걱거리던 체제에 마지막 치명타를 가한건 코로나19였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그랬듯이, 그야말로 극적으로 여객수요가 공중분해되면서 영업실적은 반토막을 넘어 1/3, 1/4토막이 나다시피 해버렸고, 이렇게 폭탄이 터지니 민영회사들은 손절하겠답시고 사업포기를 선언해버립니다. 리먼때도 이런 행태가 터져서 포기된 사업을 직영하고, 이를 보완하는 손익공유제도를 만들어 넣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영업붕괴는 이것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결국 영국 정부는 프랜차이즈 제도를 포기하고 신 제도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고, 그 첫 그림이 이번에 나온 겁니다.
사변이 길어졌는데, 이 신제도의 윤곽을 다른 보도 등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기본적으로는 유럽 대륙지역, 특히 독일 등지에서 실시하는 이른바 컨세션 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컨세션은 이른바 운영위탁이라고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데, 차량, 시설 등을 모두 위탁받고, 영업제도, 마케팅, 다이야, 열차구성 모두를 위탁원이 지정한 대로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정비나 시설물의 관리는 또 별개의 위탁계약으로 갈 수도 있고, 통합되어 갈 수도 있는 그런 구성입니다. 즉, 사실상 인력을 공급하고 이를 관리하며, 수익금을 수취해서 위탁원에 보내주는 것이 수탁자 역할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컨세션 제도에서는 입찰 경쟁이나 협상을 통해서 마진을 포함한 수탁비가 결정되는 구조입니다.
물론, 이 제도적 틀은 국내에서 흔히 보이는 하청의 형태와 크게 다를게 없고, 그래서 실제로 해외 실무에서는 인건비 따먹기 형태로 흘러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사업자의 자격조건을 엄격히 규제한다거나, 인건비 단가나 투입인력 수를 규정하거나, 또 고용승계 의무 등 근로자 보호 의무를 부여하는 등의 보완적 조치가 많이들 들어가고, 우리나라도 실제로 공공위수탁에서는 이런 식의 규제들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기는 합니다. 여러모로 구멍이나 보완점은 있지만, 지금까지 널리 쓰여왔던 제도인 만큼 그만큼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고, 그래서 이 틀을 기반으로 신 체제를 구축하려고 하는 걸로 보입니다.
여기에 영국은 기존의 시설관리자 역할로 국한된 네트워크 레일을 영국철도, 영어 표현을 직역하면 대영철도로 대체하겠다고 이번에 발표를 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또는 프랜차이즈 입찰절차에서 행정지도의 형태로서 그나마 비슷하게 틀은 갖췄지만 사업자마다 전부 따로 놀던 영업제도와 운임, 티켓팅 방식을 하나의 단일한 제도로 정비하고, 그 티켓팅 시스템 또한 직할로서 운영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운영위탁을 민간회사들에게 위탁하는 형태를 취해서, 사실상 다른 나라들이 거의 그렇듯이 단일화된 철도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힌 겁니다.
다만, 아직 한계는 있는게, 다른 나라의 국가 사업자는 많은 부분을 직접 고용인에 의해서 직영하고 지원 내지는 보조적인 부문을 위탁하는 형태들이 대부분에 가깝습니다. 지자체 관할의 철도 서비스에 대해서는 위탁사업자를 통해 제공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지만, 이 경우도 영국이 구 프랜차이즈에서 선호하던 입찰 방식 보다는 지명 협상이나 아예 수의계약 형태로 사업자를 지정하는 경우가 흔하고, 이 수의계약의 형태가 되는 경우엔 지자체가 출자한 공기업이나 제3섹터 조직들로 국철의 스핀오프인 예가 많습니다. 물론 민영 사업자들이 이렇게 하는 경우들도 있기는 합니다마는. 지금의 영국철도는 실질적으로 네트워크 레일이 상부구조를 먹어들어가서 구 국철을 구성해 가는 식이어서 실질 운영부문은 거의 구 운영회사에 의존하는 구조를 면키가 간단치 않아 보이는데, 과연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걸 보면 한국철도를 재발명 하겠다는 구래의 '구조개혁'이란게 얼마나 덧없이 떠돌아 다닌 짓거리였나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그 민영론자들이 극혐해 마지 않던 "국철"이라는 존재에 의탁하지 않으면 안되는 선진적인 '경쟁체제™'라는게 말입니다. 결국 과당경쟁이나 파편화의 문제 또한 관료화와 경직성 만큼이나 많은 비효율을 만드는건 매한가지였던 셈이고,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골디락스 존을 찾아다니는게 지금 시대의 화두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