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면서 든 소감은... 헐리웃 액션 좀 쩌는듯.
솔직히 말해서 통근전동차 단가가 일본보다 비싼 주제에 이렇게 아이고 나죽네 모드로 나오는게 굉장히 괘씸하단 생각이 먼저 들기는 합니다. 그동안 원가 합리화도 안하고, 그렇다고 품질면에서 만족스럽게 차를 찍어낸것도 아니면서 저렇게 징징대고 독점 몰아달라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해대는 것 부터가 참 현대스럽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일단, 해외수주가 급감한건 우크라이나 준고속차량에서 사고치고, 미국에서도 차량공급하고 소송크리 쳐내면서 대외적 이미지가 안살도브레다 수준으로 꼴아박힌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가격에서 조금 우세해도 품질에서 완전히 실격을 쳐맞았으니 될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걸 좀 제껴두고 보더라도, 까놓고 말해서 2012년까지는 우리나라가 대놓고 환율조작을 세게 굴려대던 때라서 일본업체를 압도할 수 있었고 또 중국업체가 내수물량에 치중하느라 해외에 안나와서 어부지리를 본거라서 그게 "우리의 실력은 좋은데..."이라고 하면 쪽팔린 이야기기도 합니다.
물론 해외조건이 굉장히 악화일로를 밟은건 맞습니다. 일단 일본이 아베노믹스로 환율을 만지기 시작한데다 대외수주를 기업집단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덤비면서 영업력이 굉장히 강화된데다, 영국같은데서 대박을 친 덕에 꽤 힘쓰기 좋은 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 10여년간 그야말로 미친듯이 철도건설을 확장하고 운영부문도 급속도로 확대하면서 차량구매도 덩달아 미친듯이 급증했는데, 이 내수공급이 둔화되면서 누적된 기술력과 막대한 생산캐파에 기반한 가격경쟁력으로 사방으로 덤비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정부가 공격적으로 대외차관을 공급하면서 시너지 효과까지 막강하니 한국이 덤벼볼만한 틈이 없어지게 된겁니다. 가격에서도 품질에서도 일본은 커녕 중국에도 발리고, 그렇다고 기술력도 일제 핵심부품에 의존하고 영업조차 일본계 종합상사에 업혀다녔으니 뭐 국제적으로 살아남을 가망이 있을리가 없었달까.
다만, 해외수주 부문 문제가 자꾸 핵심 논제가 되는 현 상황은 좀 변죽 올리기에 가깝습니다. 로템이 해외수주에 의존도가 좀 있기는 했지만, 결국 철도차량산업의 흥망성쇠는 국내 발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지난 10여년 간의 철도산업 정책이 어떤 방향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논란의 근원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동안 철도 자체는 꽤 꾸준히 건설이 이루어지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건설된 노선은 많지만 실제 열차운행이 극적으로 늘어나게 된건 고속철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고속철도 1단계 개통으로 증강할 수 있던 편수는 100회 남짓에 불과했는데, 기존선 공용으로 인해서 서울발 KTX 열차는 늘어도, 서울발 일반열차나 지방 발착 열차는 증강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통일호 전폐를 단행하고, 이후 구조개혁이 필요하네 비용절감이 필요하네 하면서 열심히 쪼인트를 까댄 결과 자잘하게 다니던 로컬 열차들은 그야말로 학살을 당하게 됩니다.
여기에 비용절감에서 특히 큰 압박을 받은게 차량부문이었습니다. 차량정수가 줄어드는 만큼 인력을 줄일수 있고, 그만큼 코스트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차량구입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개되었습니다. 비록 일부 롤백당하긴 하지만, 중앙선/경의선의 6량화 정책이 나온게 바로 이런 과정에서 나온거였습니다. 이것도 모자라서 그나마 증가경향이던 광역철도 차량조달도 최대한 아끼고 절감해 이루어진 면이 있고. 특히나 정책적으로 2009년 이래 운임동결을 장기간 밀어붙이거나 선진화정책이니 뭐니 하면서 철도운영회사들의 노오오력이 부족하네 뭐네 열심히 날뛴 결과는 임금상승 억제만 부른게 아니라, 차량구매나 부품 조달까지 크게 억제시킨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여기에 간선/광역철도 외에 도시철도 쪽도 문제인데, 일단 공항철도와 서울9호선 외에 대규모 도시철도 건설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물론 경전철 시스템들은 여러군데 들어섰고, 부산4호선이나 대구3호선 건설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쪽은 기존의 철도차량과는 좀 류가 다른 시스템들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나마도 로템이 아니라 다른 업체에서 제작해 들여온게 대부분이라는 점이 현대로템으로서는 뼈아픈 부분들일거고. 그나마도 기존 도시철도망의 확장 자체를 정부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극한으로 얽어매는데다, 새로 건설하려고 해도 무조건 지하로 건설하라고 핌피가 날뛰니 사업비가 미쳐돌아가서 도저히 될 수 없는 방향으로만 전개가 됩니다. 일본도 잘 못하는 지하노선을 서울처럼 땅값이 미친데도 아닌 일반시나 군 레벨에서까지 요구를 해대니 뭐 이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물가통제 한답시고 운임도 못올리니, 철도와 달리 부대사업이나 부동산이라는 도망칠 구멍이 없는 지하철 회사들은 모조리 경영이 박살이 나고, 이 박살난 경영은 지방정부의 재정보전으로 채워야 하니 건설이나 사업확장 같은건 도저히 꿈도 못꾸게 되고 말입니다.
이런 식의 구조조정 정책으로 발주만 줄어드는 거면 차라리 철도차량산업의 캐파를 깎아서라도 버틸 여지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좋은 방법은 아니기는 하지만. 문제는 발주가 줄어드는 것 외에 차량부문의 합리화를 위해서 차종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여기에 기술적인 모험 자체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일상화된다는 겁니다. 기술적인 시도가 없다 보니 정말 산업의 성장 여지가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그 결과는 지금의 국제적으로는 망한 판이 되어버리는 거랄까.
물론 이미 성장기가 지나버린 우리경제의 여건을 생각하면 계속 확장정책을 지속하는 건 어려움이 있긴 하고, 철도 자체도 운임인상을 무한히 할수도 없고 또 공적 재원으로 이를 무한정 채울수 없는 한계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노오오력이 부족하네 어쩌네로 일관하고, 당장의 한 푼을 위해 미래와 성장을 팔아버린 결과가 이 지경까지 온 택이랄까.
사실, 일본국철의 구조개혁 당시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82년에 채용, 건설의 동결이 단행되면서 차량발주 역시 필요최소한도로 억제되었고, 그 상태로 87년까지 쭉 이어지게 됩니다. 물론 차량발주가 완전히 없던건 아니지만, 물량억제가 워낙 장기화되다보니 철도차량산업체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87년 국철개혁 이후에 정책적으로 차량개발을 적극 나서는 한편으로, 209계로 대표되는 "중량절반, 수명절반, 가격절반"이라는 컨셉이 나오게 됩니다. 명분이야 신형식 차량으로 가격과 효율을 극대화 하겠다는 이야기지만, 수명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차량의 교체를 더 빨리 하여 차량산업에도 어느정도 지분을 보전해 주겠다는 의도를 깐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JR 7개사로 분할하면서 이른바 지역밀착형 영업체계를 강화한다는 명분 하에 단편성의 로컬 열차를 대량으로 증강하고, 지방대도시의 통근교통도 강화하는 등 사업확대를 병행하면서, 구조개혁으로 인한 산업체의 타격이나 고용문제 같은걸 상당히 풀어내었던 전례가 있습니다.
즉, 구조개혁으로 재정적인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로 인해서 고용이나 유관산업까지 같이 작살나는 걸 피하는게 중요한데, 솔직히 말해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철도구조개혁은 건설 하나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고용도 작살내고 운영부문이나 유관산업까지 다 같이 작살내버린 문제가 심각한 정책이었다는게 귀결인 셈입니다. 그 작살나는 유관산업의 제1선이 바로 철도차량산업인 셈이고.
그래서 대안이 무엇인가.... 현대로템이 주장하듯 차량제조를 독점화 시키고 한 회사에 몰빵해 주면 장땡이 되는가 하면 그건 아닐겁니다. 그건 좀비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할거고, 솔직히 말해서 이미 한국이 FTA같은걸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상황에서 돌이킬 수는 없는 영역입니다. 그게 가능하면 그냥 도로 철도청 만들고, 지방지하철공사들도 다 지자체 교통국의 지방정부 현업으로 돌려버릴수도 있을겁니다. 그게 될 수 없는 이야기라는건 당연한 귀결이랄까.
이 와중에서 좀 해볼 수 있는 영역은 결국 지방광역철도 쪽일겁니다. 이미 인구축소가 코앞에 와 있는 상황에서 지방광역철도 확대가 재무적 채산성을 가지긴 쉽지 않기는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죽어나가는 노선이 제법 나올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광역시와 지방 거점도시의 교통 자체는 향후로도 필요하고 유지될 필요가 있고, 또한 버스 산업이 노동비용 상승과 생산성 압박으로 유지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생산성 면에서 버스보다 높은 철도를 적극 활용해야만 할겁니다.
문제는 지방광역철도를 확대하기에는 교차보조 불인정과 SR분리로 인해 철도공사의 체력이 이미 0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중앙정부가 지방교통에 보조하는 것이 가오 안산다고 생각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지방정부 재정에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지방정부가 지방에 기반을 둔 버스 운수업자들의 목줄을 죄는 정책을 적극 한다는 건 난망한 부분이 있달까 그렇기도 합니다. 지방공기업이 들어가면 좋겠지만, 다들 재정에 펑크가 난 상황에서 교부세를 밀어줘봤자 당장 제코 석자인거부터 메꿀 수 밖에 없는 판이기도 하고. 결국 이런걸 다 뒤집어 보면 전국구 플레이어이자 이미 기존 네트워크를 굴리는 철도공사 외에는 운신의 폭이 확보된 조직이 별로 없는게 딜레마랄까.
그 외에 생각해 볼 부분은 이설 후 남겨진 폐철도선들입니다. 지금은 죄다 레일바이크 아니면 공원화로 낭비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선로들을 노면전차 내지는 소편성 열차로 지방교통에 충당하는 걸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처럼 기존 운영사로부터 차량까지 이관받는 식으로 풀 세트가 갖춰지면 좋겠지만,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게 현실이기도 하고 또 그런 식의 이관으로는 서비스 수준을 맞추기 힘든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새로 차량을 조달해서 새로운 지방운수사업으로 확장하는 걸 장려해 주면, 차량산업이 받는 압박을 어느정도 경감할 여지가 있을겁니다. 이외에 아예 신규 노면전차 같은 염가건설이 가능한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것도 차량산업으로서는 득이 될 영역이기도 할겁니다.
지하철 부문의 확대는 현재로서는 쉽지가 않은 영역이긴 한데, 지하화를 고집하지 말고 교외구간의 지상화 같은 걸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도로 평면교차나 토공구간 같은 좀 저규격의 건설이 되더라도 노선을 확장하는 노력 또한 필요할겁니다. 이쪽은 장기적인 가닥이긴 하겠습니다만.
그리고, 철도공사가 흑자전환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상황인데, 이걸 좀 더 부스트 하기 위해서 좀 선제적인 운임인상 같은걸 제도적으로 열어줄 필요가 있을겁니다. 그리고 그 여력을 분당선 증결이나, 경부선이나 경원선 등의 구간열차 증차 같은 형태로 전환해서 차량을 좀 더 확충하게 하고, 또 신성능 차량의 도입을 장려하는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서 차량산업에 어느정도 자극을 주어야 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방광역선 차량을 110km/h짜리 사골전동차를 쓰는게 아니라, 130km/h급의 일부 크로스시트를 채용한 좀 더 고규격차로 올리는 것도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