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철도박물관이 그냥 차나 몇 개 가져다 놓으면 되는거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사람들에게는 참 위험한 발상이라고 해 두고 싶습니다. 박물관이 유물을 모아 두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물건들을 연구하고, 그런 물건들이 어떻게 쓰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밝히며, 그걸 근간으로 역사적 지식을 만들어 미래를 향한 영감과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일회적으로 유물을 모아두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물을 발굴하고 가치가 높은 것들 위주로 대중에게 제시하며, 필요에 따라서 수리와 보수를 하고 복원까지 나갈 수 있어야 할거라고 하겠습니다.
이점에서 현재의 철도박물관은 아쉬운 바가 많습니다. 구형 차량을 복원해 실제 운행하던 시절도 있고 나름대로 유물을 수집해 전시물을 확대하고 하는 노력도 하고 있고 현재의 박물관이 있어서 차량을 비롯 여러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지만, 이런 작업들을 충실히 할만한 학예인력도 부족하고, 이를 뒷받침할 재정적 바탕도 약한데다, 시설 또한 80년대 공무원들이 하던 일이 그렇듯이 그냥 물건만 채워두다시피 한 그런 구조로만 되어 있습니다. 입지 등에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교육시설 일체를 이전하면서 편의적으로 설치한데 불과하다시피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엄밀히는 기존의 박물관을 충실화하는 노력이 선행되는게 맞다고 봅니다. 건물 한 두 동, 부지 몇 백 평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과거 철도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현장의 생활, 직무, 행태, 도면이나 매뉴얼 등 축적되어 있는 지식과 정보들, 그리고 실물들을 유기적으로 개발, 발굴, 연구할 수 있는 인력과 조직이 확보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결국 철도청의 후신인 철도공사 내부에 머물러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보존하는 작업이 절실한 만큼, 외부화 하기 보다는 내부화하는 것이 바람직할겁니다.
사실 지금의 의왕 박물관은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못하기는 합니다. 부지도 이미 포화상태에 가깝고, 해외 박물관에서는 필수라 할만한 인입선과 정비고도 없으며, 문서 등을 연구, 보관하는 아카이브 기능도 지극히 한정적이다시피 합니다. 차량은 지붕 없는 노천에 전시되고 도장 보수 정도만이 이루어지다 보니 보존상태도 상당히 떨어지는 상태여서, 현재의 운영조직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기까지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노고를 했지만, 좀 더 이걸 고도화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랄까 그렇고 그점에서 새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새로 박물관을 둔다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할겁니다. 우선, 첫째로 인입선이 확보된 철도 연선에 입지해야 합니다. 현 의왕 박물관의 경우 의왕역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입선이 없고, 새로 부설하려고 해도 부지의 높이차, 인접도로 조건 등으로 인해 굉장히 난해한 상태입니다. 년간 몇 번이나 쓸까 싶다고 하지만, 아예 없다 보니 차량 하나를 반입하는데도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시피 합니다.
둘째로, 가급적이면 과거 차량기지에 입지하여 정비고 등의 구 시설물을 최대한 활용, 차량 보존과 전시를 위한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하는게 필요합니다. 또한, 이런 정비고들은 작업을 위한 선로들이 여럿 부설되어 있다 보니 전시공간 구성을 바꾸거나 하기도 용이하고, 건물 구성에 따라서는 호이스트, 피트, 공구류 등 작업용 정비고를 큰 비용없이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차량기지 전체 공간을 쓰지 않더라도 비교적 넓고 구성이 좋은 정비고 1동과 보조시설 일부를 존치해 활용하는 식이라면 비교적 염가에, 인입선까지 완비된 굉장히 효율적인 공간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셋째로는, 은퇴자 재고용, 학예인력 등을 적극 활용하여 당대의 생활, 업무상을 복원하고, 동태보존 등 차량의 외형이 아닌 메커니즘과 운용까지도 보존하는 종합적인 운영이 확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비용이 들겠지만, 건물만 크게 지어서 일상경비를 낭비하느니 고용과 지식을 생산하는 그런 시설이 되도록 운영의 방향이 잡혀야 할겁니다. 막말로, 증기기관차 형식이나 운영, 운전기법 조차도 제대로 정리가 안되는게 현실이다시피 합니다. 그냥 역사를 계승하네 뭐네 허세만 들이기 보다는, 정말로 내실있는 지식의 생산처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재정적 여력이 있는 JR 각 사가 박물관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해서 문화사업이자 수익사업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뭐 우리나라 철도박물관은 민간 박물관에 비해서도 한참 싼 입장료를 받고 다른 수익사업도 크게 하지 않는데, 저런 곳들은 입장료도 제법 비싸고 수익사업도 굉장히 빵빵하게 넣어두고 있기까지 합니다. 상업화가 과하다는 우려가 들기도 하지만, 지금보다는 좀 더 역할을 크게 가져가는 그런 시설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