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우리나라의 차량산업의 여건이 다른건 있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일본과 달리 제조사의 교섭력이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닙니다. 저 연산 1800대 전후의 일본 철도차량 시장 규모를 대충 주요 6개사(니혼샤료, 미츠미시, 히다치, 긴키샤료, 도큐샤료, 가와사키)와 도시바, 도요전기, 니가타트란시스, 아루나공업 같은 기타 제조사 등이 갈라먹고 있는 상황인데, 우리는 현대로템 1개사가 연산 약 800~1000량 수준에 달하는 캐파를 가지고 있고, 기타 제조사래봤자 2~3개사, 그나마도 화차조달이 끊기면서 화차제조사가 전멸해 그야말로 살아남은 차량제조사가 저모양이 된 상황입니다.
이 말은 한국의 경우 그만큼 제조사가 교섭력이 강하단 이야기입니다. 실제, 실제 차량의 조달단가를 보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크게 차이가 나는 수준은 아닙니다. 이미 누리로 조달때 엔저로 가격수준의 역전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징후가 있었고, 근래 JR의 신조전동차 가격은 이미 한국과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어, 이 추세로 발주가격이 올라간다면 5~7년 뒤에는 관세를 제외한 일본내 제조+해송운임이 국내 조달가를 넘어서는 시점이 올 거라고 보입니다. 중국에 털리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일본에 털릴 지경이 되면 산업보호를 외칠 이유도 없을겁니다.
여기에 국내 제조량수는 전동차 환산으로 연간 500량 정도를 오가는 수준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철도공사가 근래 대폐차 수요를 처리하면서 통근형 전동차를 거의 매년 100량 단위로, 또한 간선차량이나 고속차량도 연 평균 100량 내외의 조달을 꾸준히 끌고가는 편입니다. 기관차의 경우도 근래 5년 평균 20량 정도의 도입이 이어진 상황입니다. 여기에 민자사업이나 지하철 등에 조달된 물량을 감안하면 500량 정도 볼륨의 시장이 최근 수년간 유지가 되어 온 택인데, 이 숫자는 철도연장이 일본의 1/6~1/8 수준에 불과한 한국으로서는 꽤 열심히 구매한 택에 가깝습니다. 중고차 거래도 없이 꾸준히 신차를 사 준 셈이니.
사실 일본도 금융위기 이후 수출물량의 급갑을 겪고 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는 중국세의 대두 탓도 없잖아 있지만, 현지생산 물량의 증가로 인해 일본 국내제조업의 확대가 벽에 부딛힌 결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 기술수출에 목을 매는 것도, 일단 생산캐파가 2000량 시대에서 1600량 정도까지 졸아드는 상황에서, 완성차로서의 수출은 좀 주춤하더라도 부품수출이나 시스템 수출을 통해 좀 숨을 틔워보려는 그런 의도가 있는 감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수출부문은 총 산업캐파의 10~20% 정도로, 이게 전체를 뒤흔드는 그런 여건이라기는 좀 어렵습니다.
물론 한국은 캐파의 반 가까이가 수출용으로 할당되다 보니 좀 여건이 다르기는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국내 캐파가 콘크리트처럼 받쳐주는 하에서 수출에서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고, 그래서 생산 캐파 구성을 저정도로 가져왔던 점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즉, 국내 공공발주에 의한 원호 하에서 대외적으로 나선건데, 이제와서 그 백드래프트가 닥치면서 읍소를 하는 택이니 좀 고까운 부분이 없지는 않달까. 뭐 꼭 그렇다고 하긴 좀 애매하지만, 2000년대까지 공구리 국내시장의 이익으로 해외에서 공격적인 비즈니스를 하던 현대차와 비슷한 경영모델이라면 경영모델일겁니다. 그러다가 품질논란이나 상대적인 환율경쟁력에 밀리면서 박살이 나고, 내수시장에서의 불만에 제대로 대처못해 흔들리는 것도 비슷하고.
여담이지만, 이걸 타개하기 위해서 차량정비시장을 개방해 달라고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뭐 좋게 말하면 시장개방이지만, 실체는 코레일같은 대형철도사업자들의 정강이를 정부가 걷어차서 구조개혁을 빌미로 정비사업을 불하해 달라는 그런 더티한 방향을 요구한다고 봐야 할겁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의 결과는 공공비효율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외려 높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차량정비는 기본적으로 운영사의 소관으로 돌아가는게 많습니다. 유럽의 경우 제조사가 정비를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철도회사가 자체 정비창을 가지고 직영 공장 또한 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DB의 자회사 중에도 정비사업부문이 존재하기도 하고, 심지어 DB가 유럽에서 유일하게 신차 일체를 전부 제조하는 부문도 존재합니다. 그게 연관식 보일러 제조능력을 유일하게 가진 마이닝건(Meiningen)의 증기기관차 공장이기는 합니다만:-). 미국 또한 1급 화물철도회사들은 대규모의 자체 차량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지방의 커뮤터 레일이나 전철회사들도 직영 공장에서 직접 정비를 수행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외부 정비 조달은 말 그대로 초기투자 부담이 너무 크거나, 아니면 그 차량 자체가 주력차량이 아닌 일종의 마이너한 차량이거나 아예 리스 회사 소유의 차량이라서 외부로 돌리는 경우거나 그런 예가 강합니다. 뭐, 당장에 오픈억세스 경쟁의 신기원 드립을 치는 NTV같은 경우도 차량정비는 직영샵을 만들어 돌리는 지경이기도 하고.
차량부문의 직영 추세 자체는 사실 흔히 생각하는 조직키우기의 관점이 아니라, 사업의 합리화를 위한 내부화, 즉 수직계열화에 가까운 그런 면이 강합니다. 제조부문 자체가 열악하던 시절에는 제대로 된 정비를 하려면 내부화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그랬고, 제조부문이 발달한 지금에서는 외려 외부화 할 경우 정비는 제대로 하더라도 정비단가 면에서 상당한 코스트를 부담하지 않으면 안될 가망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고 봐야합니다. 자동차 정비에서도 과잉정비 아니냐고 종종 분쟁이 벌어지고, 부품 조달에 대해서도 늘 의심이 많이 들어가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경향이 큽니다. 하물며 철도차량의 경우 자동차에 비해 오래 쓰기 때문에 정비로 소모하는 비용이 굉장히 큰데다, 부품의 교환범위도 상당하기 때문에 이런 정비 코스트에 대한 분쟁가능성은 상존하고, 이걸 분쟁이나 감시노력으로 코스트를 쓰느니 아예 내부화 하는게 나은 결과를 초래하는 그런 상황이랄까.
결국, 이런걸 어설프게 정부개입으로 개방하네 마네 하면 결과적으로 공공비효율이 더 증가하는 아이러니가 생겨날 가망이 높습니다. 공공부문이 비용을 가져가고, 돈을 버는건 민간업자가 되는 한국식 민영화의 전형이 된달까... 혹여라도 이거 드립치는 놈이 정부에 있다면 그 인간이야말로 배우신 분이시니 그에 걸맞게 조리를 돌려주다 못해 틀어주는 대접을 해 줘야 할겁니다.
P.S.:
좀 더 나간 이야기지만, 일본의 증기기관차 운행은 대부분 실제 운전코스트를 충당하지 못한 예가 많고, 그래서 공적인 지출, 대부분 지역 상인회나 기초지자체의 갹출을 통해 정비비용 같은걸 보전해 준 예가 많습니다. 아예 차량조달(이라기 보다는 사용가능하도록 복원하는 과정)을 그렇게 돌려버린 예도 많고. 이런 정비위탁은 JR의 철도공장에 하고, 여긴 그만큼 코스트가 엄격한 편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좋다고 추진을 하고, 증기기관차를 임대해 오려고 경쟁이 붙기도 합니다만...
다만, 증기기관차 운행에도 흑자기조를 유지하는 회사가 하나 있는게, 오이카와 철도입니다. 여기도 인구유출이 커지면서 과소지화 되어 근래 총 운수수입의 악화가 현저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증기에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 편인데, 실은 여기가 유일하게 직영 차량공장에서 증기기관차 정비의 모든 단계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중정비까지 직접 회사내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그만큼 정비코스트를 합리화할 수 있어 저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중정비를 직영하기 위해 부족한 공장 시설을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오만 궁상을 다 쓰면서 일을 한다고 하기는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