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여론이 기강해이나 후진국형 인재 같은 변죽만 올리는 모양새는 여러모로 꼴불견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전 발생한 바트 아이블링 사고같은 경우는 철도 부문에서 선도국가로 꼽히는 독일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적 오류가 그대로 별다른 시스템적인 방호 없이 사고로 이어진 그야말로 엽기적인 케이스였지만 후진국형 인재나 사장 부재로 인한 기강해이 같은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말잔치이자 선동이고 사고의 실체적 진실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뭐 한국의 언론이란건 친정권이나 반정권이냐만 다르지 기본적으로 프라우다나 로동신문이랑 다를게 없는 마인드니 그렇기는 하겠습니다마는.
이번 사고에 대해 알려진 범위 내에서 보이는 건 관계직원의 인적오류가 근본적인 원인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관제사의 지시 잘못인지, 운전 중인 기관사의 착오인지는 좀 더 조사가 진행되어야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한가지 걸리는 점이 127km/h에 달하는 속도로제한 45km/h 분기기에 러쉬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시스템에 의한 방호가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특수한 취급이라고 하더라도 심야에 반대방향 선로를 이용하는건 종종 있는 일인데도 어떤 방호장치같은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정이 좀 주목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물론 기존의 저속 철도에서는 선로의 최고속도는 곡선이나 구배 때문에 최고속도는 135km/h까지 낼 수 있어도 실제로 요소요소마다 감속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선로전환기 속도초과 사고가 날 가능성이 심하진 않았습니다. 과거 분기기 속도위반 사례들을 보더라도 90km/h 내외에서는 차내에 대소란이 나기는 해도 차가 탈선전복까지 가지는 않는 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위험도는 제한되었고, 더욱이 어차피 정상속도와 제한속도의 격차가 크지 않아서 열차 운행시간의 편차도 적어 운행관리 상의 부담도 적은 편이었습니다.
문제는 현세대의 개량선들일겁니다. 순천~여수엑스포 구간은 KTX 정도만 활용하긴 해도 230km/h 운전구간이 있는 무지막지한 고속 선구에 역간 거리도 길고 곡선이나 구배제한도 별로 걸리지 않는 그런 선로입니다. 이는 정상적인 주행속도가 100km/h 이상까지 날 수 있단 이야기고, 감속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운행시간 편차도 크게 벌어져서 운행관리상의 부담이 늘어난단 이야기가 됩니다. 더욱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선로를 심야에 달리다 보면 항공에서 말하는 비행착각(vertigo)와 비슷한 상태에 빠질 우려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가감속과 신호 확인을 반복해야 하는 구식 철도와 달리 그냥 죽 이어진 선로를 계속 달릴 뿐이니 말입니다. 최근에는 경부선에 한해서 고속선에 적용되던 양방향 신호가 적용되고 있는데, 고속화된 복선 전철 구간에도 이런 시스템이 적용되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율촌역에서 운행선로를 바꾸는 취급을 한다고 한 점은 예외적인 운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철도영업거리표 상에 율촌역은 순천역에서 11.4km 떨어진 곳에 있고 무배치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배치역이었다면 무전 통화를 통해 지시를 재확인하거나 직원이 사전에 인지를 할 수 있을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합리화 자체는 시대적인 압력이기는 하지만 만약 율촌역에 관계직원이 배치되어 있거나, 아예 배치역인 덕양역에서 전선을 했다면 사고가 없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