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그만큼 차량정수가 많다 보니 기술적으로는 굉장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고, 그래서 국철시대에는 DMH17 계열이라 불리는 2차대전 이전에 원설계가 나온 수평대향 디젤엔진을 마르고 닳도록 쓴걸로 악명높았습니다. 특급이나 급행형에는 터보차저를 붙인 엔진을 1량당 2대를 붙여서 강력화 시키고, 구배구간용 일반형에는 엔진 2대를, 평탄선에는 1대를 올린 물건을 굴린다던가 하는 식인데, 민영화 이후에 이런 설계를 국철의 악관습이라고 비난받을 만큼 기술혁신을 최소화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그게 요원의 교육이나 부품재고, 정비시설, 또 조달가격까지 생각하면 좀 어쩔수 없는 부분도 있긴 했습니다만 도가 좀 지나쳤달까.
이 국철시대의 관행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일단 워낙에 차량을 많이 생산해 둔데다, 적자선구 차량을 대대적으로 개비할만큼 재정적 여유가 있지는 않다 보니 국철시대 차량에서 그렇게 많은 변화가 들어간 편은 아닙니다. 물론,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틸팅 디젤동차 같은걸 도입한다거나, 스테인리스 차체를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시도는 있지만 주력으로 쓰이던 차량은 아직도 국철시대의 흔적이 제법 보이는 편입니다.
이번에 JR동일본의 신규 도입하는 디젤동차는 여러모로 재미있는데, 지금까지 중량증가 대비 충분한 성능을 뽑지 못한다는 이유로 기피해 오던 전기식 디젤동차를 처음으로 대량채용을 하기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일전에 디젤동차의 국내 제작사들이 여의치 않았는지 국제입찰까지 돌릴만큼 마땅한 조달처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였는데, 아마도 뭔가 좀 조정이 되었는지 하이브리드 모델도 아닌 순수한 전기식 디젤동차 2량조성 60량에 1량조성 3량을 구매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최고속도는 100km/h정도의 평범한 성능을 가진 차량으로, 선행차량은 2018년에 나오고, 실제배치는 2019년에서 2020년까지라는 좀 느긋한 스케쥴이 예정되었으며, 배치구간은 니가타, 아키타 일대 선구라고 합니다.
우리 철도에서도 RDC 폐차가 올해부터 본격화되고 마침 이게 다니던 구간들이 시설의 불충분함이나 수송 효율성 면에서 디젤기관차를 투입하기가 아주 애매한 구간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수익성이 나올만한 사업은 아니니 애매하게 붕 뜨는 분위기인데 그렇다고 구식의 디젤동차를 그대로 도입하기도 어정쩡한 그런 여건이기도 합니다. 고속선구 모델을 들여봤자 대구선, 동해선 구간을 빼면 정작 RDC에 의존했었던 구간들은 대개 80km/h이하의 운행속도를 가진 구식 노선들이 대부분이어서 예산낭비의 가능성이 다분하고, 그렇다고 너무 저가의 액압식 모델을 들이기에는 신뢰성 면에서 좀 처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RDC는 비교적 건실한 편이지만, PP새마을이나 구래의 디젤동차들, 그리고 단명한 DEC같은 차들의 말로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
그래서 좀 사심을 담아 이야기를 하자면, 저 모델을 참고삼아 110~130km/h정도 최고속도를 가진 전기식 디젤 동차같은걸 도입해 보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전기쪽은 기존 전동차들의 구동부를 활용하되 기어비를 좀 손을 봐서 쓰고, 엔진쪽은 차체 바닥에 탑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공간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3량 정도 편성에서 선두차 차체 내에 설치하거나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겁니다. 또, 판토와 주변압기 일체를 갖춘 겸용 모델을 파생형으로 도입하거나 해서 전철화 구간에서는 전동차로서 운전을 가능하게 한다면 운전구간의 폭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디젤기관차에 잉여객차를 붙여서 끝까지 버텨보자고 갈 수도 있고, 실제 경전서부선이나 동해남부선에서는 그렇게 버티는 모양새가 보입니다. 그래도, 세부적인 사양은 좀 더 고민은 필요하겠지만 고성능화나 유지보수면에서 부담이 큰 액압식에서 탈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