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국철 사업자 RENFE가 최근 EVA라는 브래드의 저가 고속철을 투입하겠다고 홍보를 개시했습니다. 프랑스의 Ouigo 브랜딩을 참조하는 모양새인데, Inoui와 Ouigo로 양분해서 플래그쉽과 로우코스트로 나누는 마케팅 전략을 AVE와 이를 뒤집은 EVA라는 브랜드로 따라하는 듯 합니다.
EVA의 주된 포커스는 25% 낮은 운임수준과 생채인식(지문)을 활용해서 멀티모달 티케팅을 한번에 처리해 주는 심리스 서비스에 있습니다. 낮은 운임 수준이라는 건 주로 소득이 낮은 청년층이나 가족, 단체이용객에 어필하기 위한 자리매김으로 보입니다. 이걸 위해서 기존에 투입하던 차량의 좌석 디자인을 더 많이 태울 수 있게, 예를 들어 2+1 레이아웃에서 3+1 대면식 레이아웃으로 바꾸는 식으로 정원증가와 좌석 공급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듯 합니다.
사용차량은 2004년 도입개시된 S102차량을 쓰는 걸로 추정되는데, 더 구형인 1992년 도입개시의 S100 차량은 알스톰과 계약조건이 걸려있는데다 궤간 문제까지 걸려있어서 일단은 논외가 된 듯 하고, S102 쪽은 신차 대체도 일부 되면서 어차피 차량의 리뉴얼 주기가 도래한 관계로 이 과정에서 과감하게 로우코스트 차량으로 돌려버린게 아닌가 추정이 됩니다.
운행은 일단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구간에 하루 5왕복 투입을 시점으로 하되, 바르셀로나 측의 시종착 역은 시내 역이 아닌 외곽의 공항역인 엘 플라트(El Plat)를 활용한다고 합니다. 이점도 Ouigo와 비슷한데, 용량제약이 많은 시내역을 내주지 않고 용량에 여유가 있는 외곽 역을 사용하는 방식을 취하는 형식입니다. 심리스 티케팅을 적극 도입하는 배경에는 아마도 이런 불리한 터미널 입지를 연계교통으로 해결을 해 보겠다는 복안이 있다 생각이 됩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저가전략에 적극 나서게 되어서 EU에서 정책적으로 푸시를 넣었던 오픈 억세스가 어느정도 체면치레를 하는 느낌은 있습니다. 경쟁체제라는게 실제 동작하는 모양새라서 민영충들이 아주 희희낙락하고 있을거라 생각이 되는데... 사실 지금의 전개는 항공자유화 과정에서 LCC사업자들이 창궐하는 과정과는 전개가 상당히 다르게 흐르는 느낌이라 하겠습니다. 지역간 수요의 강화와 리스/정비위탁의 활성화를 등에 업은 시장조성에 적극 영향을 받은 감은 있지만 신규사업자가 이래저래 많이 덤벼드는, 흔히 말하는 "창업과 폐업의 자유" 위에 항공의 LCC 붐이 성립하고 있다 할겁니다. 그런데 철도는 이런 양태와 달리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심지어 일본이나 한국의 "자회사식" LCC 형태도 아닌 단순한 브랜딩 전략 정도에서 일어나고 있고, 자유창업형의 사업자는 그야말로 죽쑤는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스웨덴이나 영국 시장은 좀 더 복잡하지만 저 LCC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축이고.
이는 오픈 억세스 전략이 실질적으로는 국가간 플래그쉽들의 경쟁 형태, 즉 자본간의 경쟁을 장려하는 것이지 철도부문의 참여 퇴출의 자유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가지는 못하고 있다 할겁니다. 스페인의 경우는 네트워크 연결로 인해 프랑스의 침입에 사전 대비하는 모양새라는게 맞을겁니다. 이탈리아 NTV의 경우처럼 SNCF의 부분참입과 지역 자본의 결탁으로 이탈리아 국철(FS)이 짤짤 털리는 꼬라지를 봤으니 미리 방역작업을 하는 모양새랄까. 또 재미있게도 프랑스의 SNCF가 저가 브랜딩을 만드는건 독일 DB의 공세에 방역을 거는 모양새기도 하고 말입니다.
물론 이걸로 국민 후생이 확장된다면야 캐이득! 이겠습니다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그럴까엔 의문이 남습니다. 일단 아무리 오픈억세스를 걸더라도 결국 자본력과 차량정비나 서비스 등 기반이 탄탄하게 확보되어 있는 국철계 사업자 수준이 되어야 수익사업에 들이대볼 수 있다는 철도의 경직성과 중후장대함만을 재확인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즉, 그정도 사이즈가 아니면 남의 밥그릇에 들이대 볼 사업자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기도 한데... 유럽 대륙에서는 그나마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인접사업자의 월경사업이 많이 이루어질 여건이 되어 있지만 사실상 각각의 고립계에 가까운 극동에서는 그게 가능할 것인가의 의문은 남습니다. 아니, 국경이 붙어있더라도 내셔널리즘의 극을 달리는 극동 국가들이 퍽이나...랄까.
더욱이 국철사업자들 끼리의 경쟁이라는 이야기는 뒤집어 보면 자국 내에서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운영이나 시설 부문에 투입하는 공적 비용을 가지고 남의 집을 두들기는데 쓴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경쟁이 첨예해서 덤핑 공세를 벌인다면 그야말로 세금을 옆 나라의 열차 유지에 쓰는 모양새가 됩니다. 유럽에서 이게 유지가 되는건 EU라는 초국가정부가 있고 이들의 재정분배가 동작하고 있고, 유럽철도 인프라의 사용률이 그리 높은 편은 못되다 보니 어차피 꼴아박는 시설유지비 같은 고정성 공적 부담을 이래저래 어떻게든 더 쓰는게 유리하니까 그렇게 된다 할겁니다. 뭐 EU 외부의 스위스처럼 적극적으로 통과교통을 삥뜯어먹는 전략을 기대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혼잡 쩔고 국가간에 재정사업을 막 벌이는 분위기도 아닌 극동 국가들에게 이걸 기대하기는 어려울겁니다. 국제선이나 외국열차의 국내선 투입을 가지고 뭔 개드립이 횡행할까를 생각하면 뭐 답이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달까.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 해보이지만, 아예 인프라 단위에서 분리가 가능하다면 모르겠지만 철도처럼 모든게 엉켜있고 공사가 불분명할수 밖에 없는 사업에서는 결국 이상적인 미시경제론으로 뭘 해보려는 시도가 쉽지 않다는걸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케이스가 저 저가 서비스 붐의 이면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