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롤러코스터 타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뭔가를 찾아보다가 UIC형 객차 내지는 유럽 표준 객차라는 물건이 눈에 띄여 좀 찾아보다 보니 생각이 나서 적습니다.
철도간의 직결운행 문제는 지금까지는 SRT와 KTX 정도의 관계에서나 생각하는 정도였는데 대륙철도가 본격화되면 사실 이 부분의 고민이 굉장히 광범위해지고 신경써야 할 사안들이 확 늘어나게 됩니다. 대표적인게 국경을 넘는 열차들을 어떻게 운전시킬 것이고, 또 객차나 화차의 차량수급과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고민이 많이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영역이야 말로 지금까지의 한국철도가 다뤄보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영역이라 할겁니다.
유럽처럼 국철계 사업자들끼리 직결운행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각종 표준을 맞춰가고, 그래서 이제는 국경에서 차량과 인원의 교체 없이도 교차 직결운행을 실시할 수 있을 만큼 상호운용성의 수준이 높다면 상당히 좋겠지만, 현실은 북중, 북러와 달리 남북간에는 그런 제도적 경험이 개성공단 출입 열차 정도 외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따라서 참고는 할 수 있을 지언정 제대로 제도화나 실무관례가 축적이 되어있는가는 의문이 듭니다.
일단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가 되어야 할 것은 기술기준, 특히 차량과 관련된 부분일겁니다. 저 인용한 사진의 UIC 표준 객차가 사실 과거 상호운용성 확보를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차량 제작 자체나 발주는 각 국의 국유철도들이 실시해서 미세한 규격에는 차이가 있지만, 차량한계를 위시한 차량의 전체적인 규격을 일치시켜 제작을 했고, 그래서 국제열차로서 운행하더라도 기관차를 교체하면 국경을 넘나드는데 문제가 없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덕에 설계와 제조를 했던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사이의 직결운행은 당연히 가능했고, 동독을 통해 OSJD가맹국들도 이 차량을 널리 쓰며 이 설계를 가맹 국가 내에서도 활용해서 차량을 만들어댑니다. 심지어 중동에도 이 규격의 차량들이 진출해 있기까지 할 정도고, 이 디자인이 돌고 돌아서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도 쓰일 지경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차량부문의 규격 합치가 이루어지고 나면 당장에 큰 개량없이 유지보수 수준의 정상화만 된다면 북한측 동력차가 견인하는 형태로 북한 영내를 통과하는게 가능할겁니다. 그리고 사실 이게 전통적인 국제직통열차의 운영양태기도 한데, 국가별로 신호보안과 통신, 열차의 운행관리, 기관사의 운전 숙달 등이 다 달라지기 때문에 당연히 운전계통은 그 나라의 동력차가 담당하는게 통례였기 때문입니다. 뭐 이걸 하기 싫어도 남측 기관차나 고정편성 차량을 북한 기관사들이 습숙하기도, 또 반대로 남측 기관사들이 북한 선로를 습숙할수도 없으니 이런 건 기본일겁니다.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이점에서 북한에 고속철도나 개량 간선이 본격 사용되기 전까지, 적어도 10년 정도는 상당한 수량의 객차 세력이 필요하긴 합니다. 어차피 고속철도 차량을 위시한 전기차는 현재로서는 직결 자체가 불가능하고, 디젤동차라 하더라도 규격의 일치가 안되어 있으니 무리지만, 객차의 경우라면 연결기와 공압회로, 그리고 차량한계만 맞는다면 운행에 아무 지장이 없으므로, 선로정비와 제도적인 뒷받침만 되면 차량이 나오는 즉각 투입이 가능할겁니다. 여기에 좌석형 차량 외에 24시간 이상의 장시간 운행에 맞는 침대차 등도 갖춰야 할 상황인 고로 이에 맞는 차량들이 협력사업 과정에서 충분히 확보가 되어야 할겁니다. 뭐 북한측에 동력차 여력이 얼마나 되냐가 문제긴 합니다마는.
차량 등의 기술기준이 일체화되면서 같이 이루어져야 할 사안은 차적 공용화 등과 같은 화차나 대차의 소재 및 재고 관리, 전산정보망의 공유 및 연동, 응급수리나 구난 등에 대한 절차와 비용 정산 및 보상 관련 등도 제도가 정비가 되어야 할겁니다. 화물 자체야 해운이나 육운, 항공운송에서 정례화된 관례들이 있고 여기에 대해서 경험이 우리에게도 있지만, 정작 철도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인 상태인지라 여기에 대한 체계 수립이 있어야 할겁니다. 제도적인 면에서 특히 북한처럼 현업의 전산화나 자동화가 거의 없는 동네와 일을 하게 되면 우리도 기존의 비전산화 시절의 관행과 체계를 살려내거나, 이에 대한 인터페이스를 만들어야 하는지라, 이 부분은 급한대로 일을 하면서도 꼼꼼하고 장래의 큰 틀을 갖춰가야 하는 모순된 목표를 맞춰가는 어려움이 있을겁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남북한 간의 기술, 업무처리, 전산 등이 하나의 표준하에 성립이 되도록 협력과 관리가 들어가야 할겁니다. 남측 기술이 우월하다고 하지만 반드시 남측 기술과 처리방식이 표준으로서 우월하다고 하기는 어려울겁니다. 물론 북한측의 각종 제도들은 일제시대 이래 크게 바뀐게 없는게 많기는 하지만 또한 우리가 전혀 다뤄보지 못했던 부분들이나 일찌감치 잃어버린 부분들도 많이 남아있을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쓰고 있는 ATP같은 신호보안이나 25kV기반의 교류전철화 같은건 북한철도의 근대화를 하면 빠질 수 없는 표준들이라 할겁니다. 궤도설비 쪽도 대개는 우리쪽이 성공리에 도입해 자생화 시켰거나,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있고 제조능력이나 시공경험이 많다 보니 북측에서도 그대로 쓰는게 유리할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협궤철도같은건 우리나라에선 완전히 실전되었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현역인데다 러시아나 중국에서 도입한 설비들로 현대화까지 한 곳도 존재합니다. 또한 지금은 낙후기술 취급을 받지만 3kV 직류급전 같은것도 북한은 오랫동안 널리 쓰면서 지선망에도 상당량 보급되어 있는데 이런 곳까지 대체하려면 30년 이상의 기간이 걸릴 곳이 수두룩 할겁니다.
반면 더 거시적인 영역의 경영과 제도의 일치화는 사실 정부조직의 문제가 되니 거기까지는 지금에서 생각할 일은 아닐거라 봅니다. 물론 제도나 경영의 정보교환과 자문이라던가, 인적 교류와 연수, 또 업무상의 현지파견 조직 같은건 활성화가 되어야 할겁니다마는, 뭐 이 부분은 너무 멀고 또 앞서나가는 이야기일테니 후대의 고민으로 놔둬도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