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열차는 뭐 사실 따지고 보면 트램이나 광역전철 수준의 1~2량 짜리 열차도 존재는 합니다. 10량이 넘는 장대한 편성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관통해 다니는, 왕년의 오리엔트 특급같은 열차가 있는가 하면, 정말 국경을 끼고 양 도시를 연결하는 정도의 간결한 국제선들도 종종 존재합니다.
실질적으로 보면, 대개 국제열차들은 유로스타 같은 좀 예외적인 서비스가 아닌 이상에는 국경역에서 CIQ, 즉, 세관, 검역, 입국심사 같은 과정을 거치는게 보통입니다. 따라서 고속철도가 뚫리고 여기에 대해서 양국간의 협약같은게 체결되어서 도착역이나 출발역에서 심사를 완료하는게 아니라면 국경역에서 모든게 집약처리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도라산이나 제진같은 역이 꽤 큰 시설을 갖추어 건설이 된겁니다. 시간상의 로스가 상당히 생기긴 하지만, 국제선을 타고 다니면 이건 피할수가 없는 일이다시피 하고, 고속철도가 아닌 이상에야 속도경쟁을 할 이유가 마땅찮은것도 사실인지라. 그래서 사실 굵직한 대도시 역에 공항처럼 CIQ가 다 생길 이유는 당분간은 없다고 봐도 될겁니다. 또, 한동안은 그정도 장거리 루트라고 해도 어차피 국경역에서 CIQ가 집약될거고, 사실상 국경에서 수속이 끝나면 국내선 열차랑 달라질게 없기도 합니다.
다만, 국제선 사업이 시작된다면 철도측에서는 일거리가 많이 생긴다고 봐야할건데, 일단 국제열차는 여러 국가의 철도회사와 합동으로 수송을 하기 때문에, 운임의 정산과 운송 책임의 관리문제가 불거지게 됩니다. 티케팅 역시 각 나라마다 제도가 전부 다르고, 사실 유럽식 제도를 연계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우리식의 보통승차권 개념을 적용하는게 거의 불가능하고 일종의 지정노선 패스에 가깝게 취급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여기에 철도 시설을 사용하고, 열차를 견인하고, 이걸 정비하며, 각종 열차에 부대되는 서비스 비용 또한 각 철도회사가 각자 정산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라 꽤 많은 시행착오와 연구가 따라야 할겁니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씨가 말라버린 서비스들을 되살려야 할게 많습니다. 대표적인게 위탁수화물과 1등차, 침대차, 식당차 셋입니다. 현재 설비로는 12시간 이하로 다닐 국제루트는 없다시피 하고, 만약 러시아 쪽으로 간다면 한국철도에서 유례가 없는 24시간 이상의 운행시간을 가지는 열차가 나오게 될겁니다. 이런 구간에서 숙식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고행열차가 될 수 밖에 없고, 위탁수화물을 불인정한다면 뭐 불만이 폭주하게 될겁니다. 당장에 이걸 위한 차량과 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는가를 따져보면 뭐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해야할겁니다. 그나마 1등차는 특실로 갈음한다는 개념이라도 적용은 하겠지만, 1등 운임제도가 있어서 연계노선 전부에 1등차를 최소 8석은 넣어두는 걸 과연 할 수 있을까는 뭐.... 별로 할거같진 않단 생각이 듭니다.
침대차와 식당차, 수화물은 그냥 단순히 차만 넣는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라, 호텔사업처럼 리넨을 다루고, 식재를 공급하고, 수화물의 수속을 받아서 처리하고 실제 하역을 하며, 또한 차 내에서 이걸 실제 수행할 현업 인력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문제는 이런걸 잘라내면서 지금까지 합리화를 외쳐온 과정이 있는지라, 이걸 다시 복원하는 과정이 과연 순탄할 수 있을까, 또 적정하게 장기사업으로 유지가 될 수 있을까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철도도 국제적인 스탠다드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서 갈라파고스가 되어버린 부분들이 많단 느낌입니다.
뭐 그래서 현실적으로 국제열차가 운행된다면 현재로서는 서울역이나 용산역 정도에 집약될 수 밖에 없을겁니다. 수색역이나 광운대역에 새로 터미널을 만드네 마네 하지만, 그건 중국 노선을 빼면 매일 운항이 있기 어려운 현재로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라 할겁니다. 동해선 축의 경우는 뭐 당장에 노선부터 어떻게 뽑을지 해골이 복잡해지는 이야기고. 고속철도 노선이 뚫려서, 그 터미널에 CIQ를 집약하는 경우라면 새롭게 역을 배치해야 겠지만, 지금 꼬라지는 그렇게 예비된 공간이 도심 근처에는 단 한곳도 없다시피 합니다.
문제는 서울이나 용산이나 모두 남쪽방향에서 오는 열차 처리에 집중되어 있지, 북쪽에서 오는 열차를 받기 위한 구조가 전혀 안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국제열차는 객차열차를 전제로 운행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경에서 대개 해당국가의 기관사와 동력차로 교체를 하는게 장거리 국제열차의 통례고, 심하면 아예 국내선 열차에 입환으로 객차만 옮겨달아서 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시피 합니다. 이거야 국경역에서 하면 된다지만, 객차편성이 그대로 들어왔을 때 과연 용산이나 서울역에서 회차처리를 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면 뭐 택도없다 할겁니다. 그나마 서울역은 과거엔 여지가 있었지만, 근래의 시설개량 결과로 완전히 불가능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용산이야 뭐 초토화되었고.
객차열차를 돌릴 수 있게 급한대로 기회선과 유치선을 좀 뒀다 하더라도, 이번엔 급수, 급유, 수화물, 리넨, 청소 등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설비가 있는가를 따지면 또 그건 아닐겁니다. 천상 또 회송을 보내서 처리를 해야 할 판이 될건데, 수색까지 보내는 길도 참 험난하고, 그렇다고 경부선을 태워 내려보내자니 거긴 더 험한 길이라 할겁니다. 유럽처럼 역에 인접해서 대규모의 조차시설들이 들어차 있다면 모르겠지만, 개발사업한다고 열심히 공간을 날려먹은 결과는 지금의 꼬라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뭐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막연한 먼 미래 정도 취급을 했으니.
지금으로서는 용산역 주변의 선로변 부지를 일부 철도용지로 써서, 승강장을 증설하고 객차열차를 일시 유치하고 간단한 급수, 급유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시설을 두는 정도는 가능할겁니다. 서울역에서는 정차만 처리하고 종착은 용산까지 내려오는 좀 변칙적인 수를 써야 할거라 보는데, 2면 3~4선+인상선 3~4선 정도의 공간이 어딘가는 필요할겁니다. 이걸 수색정도로 내보내잔 말도 나올 수 있지만, 수색으로 가면 경의1선에서 수색으로 넘어가는 고가를 또 만들어야 하는 등 시설적인 면에서도 굉장히 번거로워지고, 여기에 철도의 강점인 도심지 접근성은 말아먹는 문제도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시설 증강, 예를 들어 경부3선 복선화나 경의선 신촌경유 선로의 3선 내지 복복선화까지도 고려가 되어야 할겁니다마는 그나마 이게 고속철도 이전까지 국제열차를 취급할만한 여건을 만드는 몇 안되는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이게 싫으면 도라산이나 문산서 전철타고 국제객이 들어오게 해야할겁니다.
여담이지만, 국제열차를 지하역에서 취급하면 된다는 멍청한 소리는 좀 안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고속철도라면 모르겠지만, 객차 열차 기반이라면 지하역을 만들어 처리하기엔 워낙 방대한 시설이 따라가야 하고, 여기엔 물류기능도 어느정도 들어가기 때문에 차량출입이나 지하까지 운반설비가 줄줄히 따라가야 하고, 위생설비나 배연, 배기같은 문제도 걸려있어서 거기서 조업하는 사람들의 근무여건도 고려에 들어가야 할겁니다. 뭐 부동산충들이 언제는 저런 사람들 신경이나 썼나 싶기는 합니다마는. 거기에 국제열차라고 기대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시커먼 터널만 한참 쳐다보면서 시내까지 들어오는 상황이 관광면에서나 이미지 면에서나 그리 좋은 건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직 사업개시까지 얼마가 걸릴지 모르니 여유가 없는건 아니지만, 좀 서둘러서 차량수급이나 디자인 계획과 이걸 굴리기 위한 조직, 업무 구상, 그리고 여기에 연계된 시설구획까지 포함해서 입지계획이 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사실 국제열차의 기본은 컴파트먼트 또는 쿠셰트 같은 개방침대 서비스고, 이건 1량당 많아야 20인승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사업성을 만들기가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더욱이 항공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서비스만 만들면 장땡이 아닌데다, 중국, 러시아, 북한과는 소득수준의 격차나 서비스 요구수준의 차이가 워낙 벌어져 있어서 그동네의 표준 모델을 그대로 따 들어오는 것도 그리 맞지 않을거고 말입니다. 이건 단순히 재무적인, 기술적인 영역 외에 좀 예능적인, 또는 어느정도 정치적인 감각도 가미되어야 하는 영역이라 걍 외부용역 한번 대충 돌려서 할만한 뭔가는 아니란 느낌도 좀 든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