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압식 틸팅은 에어스프링에 의존해서 동작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컴프레서와 압축공기통을 일반차량보다 다수 설치하는게 상례입니다. 근래엔 전기식 도어 보급 덕에 공압은 대개 제동회로와 에어서스펜션, 그 외에 화장실이나 경적 정도에 쓰는게 보통인데, 공압식 틸팅(이른바 차체경사장치)의 경우는 단순히 압력을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감압을 빈번하게 하면서 에어서스펜션을 동작시키기 때문에 압력 소모가 상당해서 이를 보충하기 위해 컴프레서를 더 달아 둡니다.
문제는 이게 제동계통과 같이 에어를 쓰기 때문에, 잦은 제동과 틸팅 동작이 누적된다면 에어 압력이 지나치게 빠져서 제동불능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이걸 감안해서 어느정도 안전한도를 두고 경보장치가 따라붙겠지만, 이게 무력화되는 고장 또는 동작 결함이 있다면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을겁니다. 그전에 보통 제동장치에 예비 공압통이 있어서 이게 최후의 보증을 했을 듯 하지만, 만약 이 모든 장치가 주행중, 그것도 장대 하구배 구간에서 전부 무력화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이번 사고와 같은 케이스가 나올 수 있다 생각이 듭니다. 마침 근래 영국에서 경적을 동작시키다 이게 고착되면서 경적이 계속 동작해서 공압을 전부 소실해 기동불능이 되어버린 케이스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거랑 비슷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은 의심은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동장치가 동작할 수 없으니 ATS나 ATP같은 신호보안장치도 의미가 없을거고, 그나마 막을 수 있는건 19세기의 유물 취급받는 피난선 정도, 그나마도 비교적 느린 속도에서나 대응가능한 설비밖에 없을겁니다. 그야말로 기본 전제가 전부 깨진 사고인 셈이라고 해야할겁니다. 다만, 문제는 이정도로 무력화 될 때까지 아무런 경보나 안전측 동작이 없었다는게 이상한데, 설계나 차량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래서 정비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뭐 일단은 설레발에 가까운 이야기고, 일단 공식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할겁니다. 다만 몇가지 이야기 나오는데서 이런 생각이 들었기에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