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희대의 사고다 보니 원인 특정에 상당히 설왕설래가 많은거 같고, 실제 확정적인 결과가 나올 때 까지는 뭐라 말하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 일단, MBC 측의 보도(링크) 등을 보면, 선로전환기의 오작동이 핵심 원인이고, 이 오작동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선로전환기의 배선이 반대로 체결되어 있던게 가장 문제였던 걸로 보입니다.
관건은 배선 오류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에 있는가 일겁니다. 유지보수 책임은 철도공사가 하고 있기는 하지만, 총 사용개시로부터 1년 남짓이 지난, 별다른 개량이나 변경 요인이 없고, 중대사고가 난 적이 없는 설비를 유지보수 측에서 이리저리 바꿔끼웠을 일은 상식적으로는 없을거라 봅니다. 사고 시점에서 선로전환기 고장 조치를 위해 선로 현장에 나가있었다는 이야기를 봐서는 이른바 신호기계실을 고장의 원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랬을거라 보입니다.
1년 넘게 이 상태를 알지 못했다는 질책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상황은 좀 복잡한 걸로 보이는데, 강릉선 KTX 운행개시일은 작년 말이고, 시운전 기간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갈겁니다. 이걸 기준하면 1년이 넘었을 거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차량기지와 본선의 사용개시 시점은 대개 어긋났을 가능성도 있고, 또 정동진에서 가건물 살이를 하던 일반선 기지 기능이 넘어와 신호장이 하나 더 추가되고 일반열차가 운행개시한게 7월 18일으로 이 사이에 연동조건이 바뀌거나 시설물 변경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을겁니다.
가설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 이 선로전환기의 기능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즉, 강릉선 KTX 개통 시점에는 제대로 되어있었지만, 이후 차량기지 사용 개시 시점, 영동선 공사가 지연되어 수행되는 과정에서 뭔가 미스가 생겼다거나, 반대로 개통시점의 미스를 사후 수정했어야 하지만 이후 공사에서는 이미 설치되어 있는 시설물이기 때문에 기 사용 시설물로 보아 제대로 검증이 안돌아간 게 아닌가 라는 의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공단계의 오류와, 이 시공이 적정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감시하는 감리의 실책을 뚫고, 이후 철도공사가 인수인계를 하면서 다시 한번 시설물을 검증하는 과정 또한 돌파를 했던걸로 보입니다. 이점에서 이번 사고는 3중의 주장갑대를 뚫고 들어온 통한의 철갑유탄이라 할겁니다.
사실 선로전환기는 오작동시에 치명적인 장치 중 하나기 때문에, 그 동작을 검증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여럿 되어 있습니다. 논문 자료에 다뤄지는 일반선용 NS(일본신호)형 선로전환기 - 그러니까 이번에 경강선에서 탈을 낸 그 일반선용 선로전환기의 기능 설명에 따르면, 두 개의 장치에 의해서 검증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선로전환기 기기 자체에 들어간 쇄정간이라는 가동부에 연동된 접점을 통해서 전환기 내부적으로 동작의 완결을 검증하며, 다른 하나는 선로측에 붙은 밀착검지기에서 레일이 완전히 밀착되었는가를 접점 동작에 의해서 검증을 합니다. 이 둘 중 하나가 오류가 뜬다면 비정상임을 알리는 경보가 나가는 형태가 됩니다. 이게 어떻게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즉각적으로 관제나 신호에 통보가 되는 형태가 될겁니다.
개인적인 추정은 결선의 오류가 완전히 두 개의 선로전환기를 바꿔끼우는 상태는 아니었을거고, 아마 밀착검지기나 쇄정간 중 하나의 결선이 신호기계실 어딘가에서 반대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을거라 보입니다. 즉, 고장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를 한건 좋은데, 이게 전혀 엉뚱하게 연결되어 있었을거고, 보도에 나오는 대로 21A와 B가 연동되는 건넘선 형태의 분기기에서 21A의 것을 21B의 것으로 경보를 보내고 있었을테니, 이런 신호결선의 오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을겁니다. 하필 A쪽은 안전측선의 것이어서 위험도가 적었는데, 하필 이쪽이 멀쩡한데 고장신호를 했고, B쪽은 본선의 것이어서 매우 위험한 것인데 고장난걸 제대로 경보하지 못했으니 이건 고장경보를 안하니만 못하는 경우가 된겁니다. 이런걸 일선 직원이 잡아냈다면 정말 자기의 능력을 넘어선 예지와 통찰을 보여준 것이겠지만, 잡아내지 못했다고 기강해이와 무능을 말하기는 많이 어렵지 않나 생각됩니다. 인지 밖에서 나버린 사고인 셈이랄까.
그리고 좀 더 부차적이지만, 이 선로 전환기 오작동의 원인이 뭐였는가에 대해서도 좀 살펴는 봐야할겁니다. 통상 결빙이나 자갈, 눈덩이 등의 비래물에 의해서 나거나, 아니면 전기적인 이유로 일시적인 오작동이 생기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 걸로 아는데, 이번 건의 경우 레일이 벌어질 정도의 고장이 있었다면 의외로 악천후가 원인으로 개입되었을 가능성은 다분하다고 봅니다. 어쩌면 사고보도 초기에 나왔던 토막난 레일이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에 걸쳐있지 않았나 라는 의심이 남습니다.
사실 검증단계를 간과해버리고 시설물을 인수한 철도공사의 실책이라면 실책이겠지만, 보통 이런 시설물의 인수도는 건설자, 즉 시행자와 시공자, 그리고 이를 감독한 감리자가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했으리라고 생각하고 받는게 보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후 하자보수같은 과정을 두는 것일거고 말입니다. 또한, 일시에 전 시설을 인수받은게 아니고, 하필 강릉시의 지하화 요구, 삼각선 및 차량기지의 건설 지연으로 단계적으로 인수를 받다 보니 각 인수부분 간의 접점에서 놓치는게 생긴 거라서, 업무처리의 불충분함이라는 문제는 남아있지만 틈이 많은 상황에서의 인수인계였다 할 수 있습니다. 이거야 말로 체계적(Systematic) 위험의 사례라 하는게 맞을겁니다.
악운이 줄줄히 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번 사고의 운은 크게 두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차량이 100km/h 가까운 상대적으로 고속도에서 탈선을 했지만, 더 높은 속도나 선형 등이 나쁜 조건을 피한 덕에 탈선전복에 이르지 않고 2량 정도만 꺾였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침 복선구간이 아닌 단선구간에서 나서 구난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생겼지만 대신 대향차량이 와서 부딛히는 2차 사고가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공학적인 분석이 따라서, 이후 차량 설계나 시설 설계 그리고 구난 대책에 반영이 되어야 할거라고 봅니다.
사고수습은 악플성 기사가 좀 나오고 있지만, 조기에 발매통제가 이루어졌던 모양이고, 대체교통 투입이나 인근 행정자원 투입도 타이밍은 좀 어긋났지만 그런대로 이루어진게 보입니다. 승무원들도 사람인데다 사고의 피해자기도 한 상황이고, 200명의 승객에 객실 승무원은 단 2명, 그리고 그중 한명은 안전업무를 부여받지 않은 외주화 인원이다 보니 항공처럼 50인당 1명의 어텐던트가 붙는 수준에 비하면 미흡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더욱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고, 주변에는 역도 접근도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토목시설물 위라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수기가 좀 지나긴 했지만 주말에 사고가 났으니 차량동원이 간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그리고 좀 문제라고 생각되는 점은, 단선 하나에 차량기지 입출고와 상하행 본선 열차를 전부 밀어넣었다는 점입니다. 분기기가 걸리고 선로가 병행하는 한에는 이렇게 한 건의 사고로 전체 시설이 죽어나가는 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이번처럼 주요 간선이 2일 연속으로 완전히 불통이 지속된건 그야말로 치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하화 요구나 예산 절감이라는 압력이 들어오면서 무리하게 시설을 슬림화하다 보니 호남고속선에서라면 복선에 단선 한가닥을 덧붙인 3선 구조를 쓴걸 오로지 단선에 도중분기로 모조리 퉁쳐놓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복선에 도중분기였다면 복구장비 투입을 빨리 할 수 있었고, 그만큼 개통도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며, 만약 입체교차나 3선으로 되어 있었다면 탈선이 날 수 있는 분기 자체가 생략되어서 본선 한가운데서 차가 완전히 나자빠지는 일은 없었을겁니다. 앞으로는 예산절감을 빌미로 이런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설계가 남발되어서는 안될거라 봅니다.
현재 철도공사의 경영은 2009년의 공공기관 선진화를 시초로 경영개선 경쟁체제 대책 등으로 지속적인 인원 삭감과 외주화를 전제로 한 업무 합리화의 압력을 받아왔고, 이번 정부 들어와서 이 10년 가까이 누적된 현업의 황폐화와 노사대립, 그리고 외주화로 발생된 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도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영합리화가 없을 수는 없는 필요악적인 부분은 있다 하겠지만, 좀 너무 심했던 부분들이 이제와서 하나 둘씩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할거고, 그 후과를 수습에 진력하는 경영진들이 덮어쓰는건 참 불운한 일이라 할겁니다.
그리고 이 난장판에서 좋다고 방만경영™의 나팔을 불어제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눈여겨 봐 둬야 할겁니다. 그들이야 말로 요즘 흔히 말하는 "좆문가"들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