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논란의 근거가 되는 기록은 한국철도사 1권 49페이지에 언급된, "즉, 1895년 2월 일본군에 의하여 21吋(인치)의 일본식 철도 선로가 진남포와 평양 간 55哩(마일)에 부설되었다고 한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 근거로, 교과서에도 언급되는 구한말의 미국인 호레이쇼 뉴튼 알렌의 일지 66페이지라고 주석을 달아놓고 있습니다. 한국철도사 자체는 60년대에 과거자료를 집대성해서 74년에 겨우 1권이 나온 책이고, 나름대로 당시 보유한 문헌근거를 털어서 저술한 책인 만큼 신뢰도를 의심할 것은 없지만, 저 기사의 언급을 보면 명확한 근거가 없이 알렌의 언급이 전부라서 반신반의하는 언급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문언 그대로 읽는다면, 경인선보다 4년 7개월이 빠르다고 해석할 수 있기는 합니다. 다만, 여기서 함정이 몇 개 있는데, 일단 저게 새로 노반을 닦아서 기관차가 운행한 철도였는지, 아니면 단기간의 개업을 우선해서 도로 등을 활용해 가설한 궤도인지, 더 극단적으로 평양이나 경인선 병행으로 일시 영업을 했던 수압식의 인력 궤도였는지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만약 수압식 궤도라면 이건 철도라고 할 수 없는 물건이고, 도로에 가설한 궤도라면 대개 말이나 노새를 써서 견인하는 마차철도류의 시설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도쿄에서 마차철도가 개업한게 1882년인지라 일본에 동종의 시스템이 없던것도 아닌지라.
이 부분을 일단 스킵하고 넘어가서 증기동력으로 운행한 철도라고 인정하더라도, 언급된 21인치 궤간이라는 것의 정체가 모호해 집니다. 실은 21인치, 533mm라는 궤간은 실은 굉장히 마이너한 궤간이라서 일본의 경편철도 중에서도 채용례가 안보이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저 당시의 극동지역 미터 이하 협궤간 철도는 군이든 정부든 누가 수입해 와서 깔거나, 그걸 다시 불하받아 설치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게 아니라면 열강들이 근처 식민지나 군에서 쓰고 있어서 땡겨올 여지가 있는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디에도 533mm 궤간을 쓰는 케이스가 없다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언급한 궤간의 정체를 따져봐야만 하는데, 개인적으로 가능성이 있는건 610mm 궤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일본군이 청일전쟁 직후에 창설한 철도대대에서 영국 바그널(W.G. Bagnall)의 610mm 협궤 기관차 2대를 구입한 전적이 있는데, 이게 실은 전쟁당시의 급거 도입해서 인수한 것이 아닌가 라는 가정이 가능할겁니다. 610mm 궤간이라면 21인치가 아니라 2ft.(피트)로 표기하는데, 이를 잘못 기입 또는 독해해서 21인치가 된게 아닌가 라는 의심이 있습니다. 이후 동일 궤간을 일본 국내의 경편철도가 쓴 예도 있거니와, 이후 러일전쟁에도 사용된 전력이 있는지라 정말로 증기 철도가 깔렸다면 이것 이외에는 딱히 대안이 될만한게 없다시피 합니다. 뭐, 유럽 열강들의 전선용 군용철도들 대개가 600mm~762mm 범위 내에 들어가기도 하는지라 열심히 따라하던 일본군도 별다른 고민을 했을리가 없고.
만약에 이 2피트 궤간 철도를 부설해서 정말로 증기차로 운영했다 해도 이것을 조선 최초의 철도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간단한 문제는 아닌데, 실은 해당 기록의 말미에 '후일 철거 이전됨'이라고 언급되고 있어서, 전쟁 기간 중의 급거 설치했다 철거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하는게 맞을겁니다. 이렇게 부설된 철도는 그야말로 간신히 운행할 수 있는 수준의 것으로, 속도는 말할 것도 없을 뿐더러 선형이 불량하고 교량 등의 토목구조물을 최소한도로 설치했을 가망이 높아서 영업용 철도로 쓰기에는 일단 부적합하고, 종종 위험하기까지 했을거라 봅니다.
물론, 이런 군용 가설철도를 가지고 여객을 승차시키는 일을 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경우엔 이른바 '편승'이라는 개념을 일본에서 씁니다. 이건 제대로 된 운수영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직원이나 군인이 아닌 관계 일반인을 편의적으로 태워주는 개념에 불과합니다. 물론 드물게 돈을 받고 태우는 경우가 있지만, 그 대가는 매우 약소한 정도고 대개 "사고시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식의 면책을 걸고 태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당연히 정규 영업, 즉, 공중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했다고 볼 수 없다 하겠고, 따라서 국내 철도사를 바꿀만한 사건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비슷한 예가 중국에도 있어서, 상해에 설치되었던 우송(吳淞) 철도라는 협궤철도에 대해서 비슷한 논쟁이 있습니다. 영국인들이 청국 정부에 도로를 설치한다고 기망하고 임의로 부설한 협궤철도인데, 결국 이후에 문제가 되어서 1년만에 폐지, 청국 정부가 매입해 철거해버린바 있습니다. 중국철도의 기원은 이것 보다는 카이핑 탄광철도로 두는데, 이게 이후 중국 철도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요소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데다, 후대에도 노선이 계속 이어져서 경봉선 철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표준궤를 비롯한 여러 건설의 표준을 확립하였고, 지금까지 노선이 계승되어 이어진 경인철도가 한국 최초의 철도라 보는게 상식적이라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