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로사용료 요율의 차별은 이미 알려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한 요율인지는 애매하지만, 철도공사는 고속선 매출의 33%, SR은 고속선 매출의 50%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굴러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기존선 구간 운행이 많은 철도공사의 경우는 총 고속 매출액 대비 고속선로사용료 비율이 낮아지는 반면, 도중에 기존선 및 지선을 출입하지 않는 SR은 그야말로 선로사용료=고속선로사용료가 되는 구조입니다. 이 덕분에 SR이 철도공단에 기여하는 비중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이게 SR을 출범한 근본적 이유중 하나인데, 고속철도 건설비 부담을 철도공사가 전부 전가할 수 없어서 철도공단이 누적부채의 형태로 보류해 두고 있는 부채를 더 부담할 주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즉, 공사의 적자선, 화물 적자와 누적채무 상환으로 소진되는 재원을 빼와서 건설부채 상환으로 강제로 빼기 위한 프레임워크가 지금의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건설부채 처리를 빨리하니 좋은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함정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사의 운영적자를 메꾸는 재원을 빼내서 하는 거기 때문에 거시적인 국가의 부담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건설채무를 빨리 상환했을때 이 재원이 운영이나 고속 이외의 철도건설 부문으로 활용될 수 없는 고로 "막다른 골목"에 재원을 밀어넣는다는 점입니다.
공사의 운영적자 보전 재원을 빼낸다는 이야기는 공적 재원을 더 넣어서 적자보전을 하거나, 아니면 지속적으로 누적채무의 형태로 쌓아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채무가 계속 누적된다면 언젠가는 거대 부실이 된 공사를 청산하고, 불량채권이 된 누적채무를 국고가 부담하거나 하게 될 겁니다. 이건 모든 나라의 철도개혁에서 따라왔던 것이고, 철도청에서 철도공사로 넘어갈때도 특별회계의 철도청 채무는 국고로 어느정도 넘어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 철도구조개혁을 해서 효율화(라 쓰고 민영화라 읽는 것)을 해야한다고 울부짖은 것이었고.
즉, 공단이 흑자를 열심히 누적하는건 좋은데, 그게 결국 운영쪽의 재원에 결손을 떠넘기는 구조로서 이루어진다면 결국 어느쪽이 되건 장래 국가의 부담이자,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여기에서는 운영부문의 수지와 건설, 시설부문의 수지를 균형을 맞추고, 총 부채 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지 일방의 수익이 잘 나오는건 의미가 없다 할겁니다. 그리고 이걸 위해서 인건비 후리기, 최저가 입찰제, 갑질 같은 약탈적인 수준의 경영이 아니라 “공정” 경영을 통해 장기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는 것 또한 중요하고 말입니다.
그래도 건설사업을 방기하면 철도의 노후화, 진부화를 피할 수 없는 것 아니냐 라고 반문할 수 있을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설재원을 계속 확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는게 지금의 구조개혁 찬성파들의 주장이고 그게 국민의 편익이라 주장을 합니다. 여기에서 두번째 문제, 건설채무 조기상환의 문제, 좀 더 크게 보면 건설재원의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건설채무를 조기상환하면 좋은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건설채무는 고정된 금액이 아니라 계속 건설사업을 하는 한에는 일정 저량이 계속 유지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하고자 하는 관료의 의지에 의해서 강제로 유지되는 구조가 되어 있다 할겁니다.
현재 철도건설사업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뉩니다.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광역철도와 도시철도의 네 종류입니다. 이들 사업은 기술적인 차이도 있지만, 법률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분편익은 바로 어디로부터 재원을 충당하는가에 있습니다. 광역철도와 도시철도는 지자체가 채권 또는 지방예산으로 부담하되 국고 부담을 일정부분 가져가는 구조고, 일반철도는 국고의 부담으로 건설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런 여타 사업과 달리 고속철도는 철도공단이 채권을 발행해 사업비를 조달하고, 사후적으로 선로사용료를 받아 상환하는 구도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건설사업에 대해서 국고에서 일부, 보통 30~50%를 보조하여 건설을 하는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즉 사업구도가 임대형 민자사업과 비슷하게, 고속철도 시설물을 임대하여 주고, 그 위에서 영업하는 사업자로부터 선로사용료를 받아 채권을 상환하는, 즉 건설비에 대해 수익자가 부담하는 구조로 짜여져 있습니다. 다만, 민자처럼 자본이익을 가져가지 않고 오로지 차입자본, 즉 채권의 원리금을 부담하는 구조라는게 공단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90년대의 구상은 이른바 고속3선, 경부, 호남, 동서 3개선의 건설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고, 이중 경부와 호남 정도만이 고속철도 사업의 대상 정도로 생각되던 그런 형태였습니다. 좀 풀어서 말하면, 영리적 경영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고, 그걸로 건설비를 충당할 여지가 있는 철도 사업은 그정도로 봤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고속철도 사업은 계속 사업이라기 보다는 아주 장기간에 걸쳐지기는 하지만, 건설 후 사업비 상환이 끝난 이후에는 종결되는 프로젝트 사업에 가까운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것은 영속성을 추구하게 마련이고, 특히나 공공조직이라면 이런 경향이 더더욱 강하다 할 수 있습니다. 철도공단 역시 그러했고 말입니다. 공단의 핵심 수익원인 선로사용료를 계속해서 받아내고 조직을 영속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하여야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실제 사례를 제4차 철도망 확충계획에서 그다지 포화상태도 아니고, 어차피 시종착역 처리능력때문에 별 의미가 없는 평택~광명간이 나온다거나 하는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선진국에서 종종 벌어지는, 건설을 위한 건설을 하는 단계에 근접한 방증이라 할겁니다.
고속철도 사업은 이젠 거의 포화상태에 가깝고, 호남고속철의 마무리나, 기존선 연계운행이나 국지적인 안전, 포화를 해결하기 위한 연결선 사업 정도 범위 외에는 건설로서 수익을 낼 만한 사업은 그리 남지 않았다고 할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사업을 발굴하거나, 영리적 경영이 쉽지 않은 사업을 고속철도 사업에 편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것은 결국 고속철도 사업수익을 쌈짓돈 처럼 쓰기 위해서 라고 해야 할겁니다.
그리고, 친 국토부 스피커들이 떠드는 선로사용료는 장래의 건설재원으로서 긴요하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구라에 가깝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철도건설법 제20조에서는 다른 법률이 정하지 않는 한에는 일반철도는 국고의 부담으로, 고속철도는 국고와 사업시행자간의 분담으로 한다고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즉, 법률 레벨의 개입이 없는 한에는 고속철도 사업 외에는 공단의 고속 선로사용료 재원을 사용하는 것이 불법행위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고속철도 재원에 돈을 아무리 쌓아놔도, 공단을 해체해서 그 잔여자산을 국고에 편입하거나, 법률을 뜯어고쳐서 공단이 일반철도 건설재원을 자체조달하는 제도를 만들기 전에는 일반철도나 그 파생인 광역철도, 도시철도에는 단 한푼도 돈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공단에게 일반철도 건설재원을 부담하게 하는 순간 철도구조개혁이고 나발이고 파탄나서 구 철도청 롤백을 선언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이야기로, 그걸 규정한 순간 국고투입을 올 스톱 내지는 반토막시키는 기재부와 국회 예결특위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을겝니다. 애초에 이럴거면 구조개혁을 뭣하러 했고, 운영과 시설의 회계분리를 뭣하러 했냐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림이 되어버린달까.
다시 말하자면, 고속선로사용료를 엄청 받아 고속재원을 빨리 상환해봤자, 결국 어거지로 사업성 없는 고속철도 사업만 죽실나게 벌여서 예산낭비를 할 가망이 높아질 뿐이고, 그걸 틀어막는다손 쳐도 그냥 적립금만 잔뜩 쌓아놓을 뿐 손익이 오락가락하는 일반철도나 광역철도에 그 재원이 넘어올 가능성은 철도구조개혁을 롤백하는 거 정도의 가능성에 수렴한단 이야기입니다. 즉, 돈안되는 사업은 대충 뭉개고, 돈이 되는데 빨때를 꼽아 꿀물 나올만한 사업만 하겠다, 이것이 그 구조개혁론자들이 그토록 바라고 고대하던 관치주의 낙원이라 할겁니다. 이런 구조를 국민 편익이라 말하는건, 그냥 사기치는 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거고 말입니다.
상하분리를 통해 운영결손으로 빨려들어가는 재원을 나누어 건설과 개량에 일정부분 강제로 배분하게 한 점은, 구 철도청의 한심한, 그러면서도 구조적으로 빈핍이 강제되던 경영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필요악이라 할 여지는 있습니다. 하지만, 고속철도나 고속화 일반철도를 통해 적어도 육운에서의 경쟁력을 회복한 지금에 와서, 이런 빨대질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일을 한다는 건 뭔가 구리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