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의 낙후원인으로 경쟁체제를 안해서라는 이야기는 극히 전형적인 마타도어라 할겁니다. 당장에 1968년 IBRD에 의한 비채산 건설선 보류부터 시작해서 70, 80년대 내내 과소투자와 건설지연에 시달려 왔습니다. 신경부선 계획이 70년대 수립되었지만, 실제 경부 고속철도로서 착수는 90년대에나, 그리고 1단계 완공은 2004년에서나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시설투자도 신도시 전철처럼 개발당사자가 재원을 제공하거나 범정부적인 과업으로 추진하는 경우, 또는 경인선처럼 열받은 이용객이 유리창을 깨고 역무원 멱살을 잡는 폭동이 날 지경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했고, 차량조차 제때 교체하지 못해서 새마을 동차를 리스로 굴려보려고 몸비틀던 시절이 그 당시였는데, 인건비 조차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사화를 당국이 반대하던게 90년대 당시의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원을 갹출할 데가 없다면 민영화든 경쟁체제든 성과를 낼 가망은 별로 없을겁니다.
그렇기에 철도구조개혁으로 시설투자가 늘어난건 그런대로 인정할 만 팩트기는 합니다. 철도청의 결손 문제는 지속되고 있었고, 그 결손의 원인이 구조적 비효율에서 기인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그 구조적 비효율의 주된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기 힘든 큰 간극이 존재한다 할겁니다.
총 재원에서 건설투자가 크게 증가했고 이게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은 큰 틀에서는 사실입니다. 다만, 여기에서 핵심은 철도운영부분의 결손과 시설투자를 디커플링 하면서, 즉 일반재정으로부터 시설투자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 핵심이라 할겁니다. 이런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정부기능과 현업기능을 같이 가지고있고, 재정적으로 철도특별회계 예산에 묶일수 밖에 없는 철도청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건 맞습니다. 91년에 회계적 상하분리를 권고받은 유럽국가들은 모두 여기에서부터 그 출발을 잡았던 것이었고.
그러나, 운영부분에 대해 경쟁체제, 즉 별 모양으로 썰어서 어떻게 토막낸 쪼가리들을 굴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나라는 유럽에서도 영국과 스웨덴 정도에 국한될 뿐이었습니다. 이중 영국은 그 결과로 큰 내홍을 겪었고, 스웨덴의 경우는 잘 돌아가지만 메이저한 철도 시스템도 아니고, 사회제도적으로도 좀 특이한 케이스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조직의 규모의 불경제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30만명짜리 조직을 손본거지, 지역적으로는 명확한 독점구도를 인정하고 봤으니 상하분리와는 좀 별개의 논리였고 말입니다.
그나마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강해지면서 유럽에서는 2007년에 국내외 화물서비스의 개방, 2008 국제선 여객의 시장개방, 2019년 목표로 국내 여객시장의 개방 같은 시장 자유화 정책이 입안이 되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이런 배경 하에서 몇몇 나라에서는 부분적인 국내여객시장의 제2사업자 투입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예외적인 사례에 그치다시피 했습니다. 정작, 유럽 대륙의 주요 국가라 할만한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극히 부분적인 오픈 억세스 사업자가 출범하는데 그쳤고, 그나마도 대개 재무적으로 취약해서 심하면 파산, 쩐주가 튼실하면 사업조정과 재구조화에 의존하다시피, 근래에는 코로나를 이유로 이루어진 정부의 재정지원을 먹고 버티는 케이스가 속출하는 지경이었고 말입니다.
마일리지 제도나 셔틀버스, 도심공항터미널 이런 것들은 솔직히 말해 경쟁체제의 결과라기 보다는 정부 시책에 가깝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마일리지 제도가 폐지된 건 용산개발 무산 이후 부채과다 기관으로 지정되면서 회계상 부채로 잡혀있는 수백억원 상당의 마일리지 채무라도 경감하겠다고 폐지했던 경우였습니다. SR개업 이후에 다시 부활한건, 그나마 과다채무 위기를 어느정도 넘긴 상황에서 운임경쟁력 문제로 압력을 받는 와중에 일종의 연성 운임인하를 고른거였고.
운임결정권 이야기를 하면 ITX-청춘의 경우를 안들 수가 없는데, 개업 초에 준고속 열차에 최초의 2층열차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집단민원과 정치적 압력으로 30% 특별할인을 끼워 개업을 한 바 있었습니다. 이후 수요가 폭발해서 주말에 좌석확보에 애로가 필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정작 적자영업을 유지하다시피 했습니다. 심지어 이건 전동차가 병행영업하고 있어서 “공공성”을 이유로 할인을 유지할 명분조차 없었지만, 누가 운임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였달까. 이걸 폐지하려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가 2016년에 겨우 정치적 타협을 봐서 2년 단위로 테이퍼링을 한 후, 겨우 올해에 들어서야 이 특별할인을 없애는데 성공했습니다. 운임경쟁 같은게 여기 어디에 있었는지 많이 궁금해집니다.
도심공항터미널의 경우도 인천공항행 KTX폐지와 인천공항 수요확대, 지방국제공항 민원의 대처용에 가까운 사업이었다고 보통 해석을 합니다. 셔틀버스의 경우도 그나마 경쟁대응 정책이라면 정책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KTX 개통 초기부터 두들겨맞던 광명역 연계교통문제의 대안으로 인용된 것인데다, 결국 부천방향의 8808 같은 노선은 운영사업자의 적자누적으로 폐지되어 버리는 등 실상은 교차보조를 통한 적자대매출이라 합리적으로라면 이런데 힘뺄 이유도 별로 없는 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남은 사당행 8507의 경우도 운행조정과 민원 힘겨루기 끝에 지금의 균형상태에 있는 걸로 알고 있고.
80년대부터 구조개혁을 했다는 건 아마도 누군가의 뇌내에서는 사실이라 할겁니다. 실제로는 아무도 그 시점에서는 시책을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EU내에서 가장 앞선 사례인 스웨덴의 상하분리가 겨우 80년대를 맞춰서 1988년에 단행된 것이었고, 이후 EU지침에 따른 시설과 운영의 회계분리 지침이 나온게 1991년의 일이었습니다. 일본이 그나마 87년에 분리를 단행했지만 상하분리형 개혁을 한 것은 신간선 뿐이고, 그나마도 90년대에 다시 운영사에 불하해버렸으니 그냥 의미없는 케이스였습니다. 영국도 흔히 민영화에 환장한 대처가 철도 민영화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후인 90년대 존 메이저 정부가 했습니다. 독일철도의 경우는 개혁 자체도 있지만, 통일 과정에서 서독의 연방철도와 동독의 국가철도, 그리고 특수법인체인 서베를린 철도까지 담아낼 새로운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에 현재의 독일철도 주식회사(단, 주식은 정부 보유)가 태어난 겁니다.
현재의 경쟁체제가 실질적으로 몇가지 보여주기 수준의 경쟁효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레짐을 유지하기 위해서 철도공사는 기존선과 광역전철 운영의 적자를 밑돌빼서 윗돌에 괴고 있고, 비용효율성을 도외시한 SR밀어주기를 위해 수익성 자산인 차량을 임대하고, 차량정비, 역무대행, 승차권발매대행 등의 저가 수탁을 밀어주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런 와중에서 철도공단은 선로사용료를 뽑아먹으면서, 역대최대 수준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면서 어떻게 돈을 불태워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고 말입니다. 실제 용량증강이 필요한지 조차 명확치 않은 광명~평택의 고속철도 복복선 사업을 꼽아넣으면서, 지역 곳곳에서 집단행동이 벌어지는 광역철도 사업인 GTX-D를 짤라내는 수준에 이르면 뭐 이런 의혹이 안들래야 안들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근래 전라, 동해, 경전 등 기존선 직결 운행 안건이 나오니, SR의 소중한 사업권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서 철도공사의 수도권고속선 진입을 결사방어하고 있고, 반대로 철도공사가 2004년 이전부터 운영한 이른바 “리거시” 노선인 전라선에 대해서는 직결운행권을 단 1왕복이라도 받아내려고 뒷공작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건 경쟁체제라고 부르는게 아니라, 관치체제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탄소중립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철도 중심의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를 구축하려면 경쟁체제를 확보하는게 아니라, 관치의 비효율을 몰아내고 지속가능한 재정배분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상식적인 대응이라 할겁니다. 돈되는 사업을 갈라먹기 해서 관료와 철피아들의 일자리 창출에 진력하는 현재의 관치체제는 혁파가 필요한 상태라 아니할 수 없을거고 말입니다.
정부가 또다시 2013년에 하던 대로 쌍용역의 식충이, 안인역의 밥버러지 타령 하듯 선동과 날조로 승부를 보겠다고 하면, 그 후과를 단단히 준비하셔야 할겝니다. 지구 절반을 걷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꽤 많을 듯 싶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