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놓치고 있었는데, 유로터널 구간의 고속철 운영사인 유로스타와 파리-브뤼셀-쾰른-암스테르담(PBKA) 간을 연결하는 국제 고속철인 탈리스(Thalys)가 합병하고 브랜드는 유로스타를 남기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원래 판데믹 이전에 합병 추진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판데믹으로 인한 수요 급감으로 인해 정지되었다가, 지난 5월에 유로스타의 차입금 리파이넌싱이 돌아 자금문제도 해결되고 수요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재추진이 되는 걸로 보입니다. 뭐 브렉시트 문제도 어느정도 지나가고 있으니 재무적 리스크는 정리가 되었다고 판단을 한거기도 할거고 말입니다.
얼핏 보면 별도 법인으로 돌아가고 있는 고속철도 노선들이니 SNCF와 경쟁구도 아닌가 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둘 다 국제선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만들어진 조인트벤쳐, 즉 수익배분을 위한 법인체로 운행구간 비율을 근거로 출자율을 정해 만들어진 법인들입니다. 유로스타의 경우 SNCF가 55%, 2015년까지 구 영국측의 40% 지분이었다가 퀘벡주 연기금 30%와 페더레이티드 허미즈라는 펀드 10%로 나누어진 지분, 벨기에 국철 SNCB가 5%의 출자를 한 조직이고, 탈리스의 경우는 SNCF 70%에 SNCF 30%인 조직입니다. 즉, 사실상 SNCF가 최대주주인지라 딱히 병행선을 낀 것도 아닌 사실상의 특수목적회사들이라고 보는게 맞다고 볼겁니다.
두 회사의 합병 자체는 어차피 영국이 엑싯해 나가면서 저런 특수성이 있는 출자가 정리되어 버렸고, 판데믹 등으로 인해서 영업체계가 한번 크게 뒤흔들린게 있기 때문에 새롭게 정리를 단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정리방향은 법인들은 존속시키되 새로 두 회사를 보유하는 지주회사를 벨기에 브뤼셀에 만들어서 새로 출자를 정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이 지주회사는 SNCF가 55.75%, SNCB가 18.5%, 나머지 지분을 현 유로스타 출자자로 구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회사를 통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회사가 같은 고속철도 네트워크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프랑스 국내에서는 SNCF의 국내선과도 공유하고, 영국측에서도 CTRL(영불해협 터널 연결 철도)라 불리는 HS1 선로에 사우스이스턴 철도가 국내선 프랜차이즈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채널터널을 끼워서 다니는 유로스타와, 프랑스에서 벨기에 국내를 관통해서 네덜란드나 독일 영내까지 영업하는 탈리스는 둘이 같은 행선지를 가지지는 않지만 유럽 대륙 내에서는 같은 시설을 공유하는 건 동일하다 할겁니다.
궁극적으로 영업 통합이 노리는 주 타겟은 아무래도 독일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기는 한 듯 합니다. SNCF는 유럽 내의 국제선 투자에서 가장 공격적인 플레이어여서, 스페인에는 아예 SNCF가 직접 국제선을 투입하고 있기도 하고, 스위스에 대해서는 Lyria라는 브랜드를,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경쟁고속철도인 Italo에 일부 출자를 넣어두고 있기도 합니다. 유로스타와 탈리스는 사실상의 '나와바리'라 할 만큼 오래되고, 초기부터 관여해온 국제선 영업이기도 한데, 근래 DB가 독일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하에 국제선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모양새를 보이자 선제적인 대책을 추진하는게 아닌가 라는 관측도 있는 모양입니다. 마침 유로스타의 e320차량은 지멘스가 공급한 사실상 ICE-3의 파생모델로 유럽에서 가장 까다로운 안전인증을 받아야 하는 채널터널 구간 투입이 승인된 차량인지라, DB의 진출 가능성은 차량갱신이 이뤄진 2010년대부터 곧잘 설왕설래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선제작업이라고 보기도 한다던가.
이런걸 보면 참 경쟁체제라는게 어떻게 호도되었는가가 보이는 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티탄들의 충돌이라 할 수 있는, 유럽 메이저 국철간의 경쟁구도는 밑그림에서 빼둔 채 그 말단에서의 브랜드 열차 싸움을 가지고 정책을 논한다는 거 부터가 좀 시야가 좁다는 비평을 면키 어렵다 할겁니다. 또한, 판데믹 이후의 재정과 영업조건은 그리 호락하지 않을 것이 예상되기에, 다른 나라들은 극력 오버헤드를 줄이고 영업기반을 다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호황기에나 쓸만한 민간투자자 이익확장 전략에 매달리는 건 오판 정도가 아니라 밈적 사고의 반복 레벨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뭐, 그만큼 방만경영™질의 국철 종자들이 나으리들 이익에 봉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