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 하면 나오는 철도계의 해묵은 떡밥이 "왜 철도는 좌측통행을 할까?" 입니다. 자동차나 사람, 심지어 철도와 직결하지 않는 지하철의 경우 모두 우측통행인데, 유독 철도만 좌측통행을 할까 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고, 이걸 일제의 잔재 정도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도로는 원래 대한제국 시대에는 가로관리규칙 제6조에서 가로상의 제차와 우마에 대해 우측통행 원칙을 적용했는데(대한법규류찬, 993), 이후 일제당시인 1921년에 좌측통행으로 변경을 했었고, 해방 이후 미군정시절인 1946년에 도로만 다시 우측통행으로 전환했던 바가 있습니다. 반면, 철도에 대해서는 대한제국 당시에는 정의한 바가 없었고, 일제 당시에는 운전규정에서 통행방향을 좌측으로 규정한 것이 있는 정도로, 이후에도 이를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위의 배선도를 인용한 것은, 1920년대 시점, 즉 도로의 좌측통행이 확립될 당시에 있던 배선으로, 영등포~서울 방향은 이미 복선이 적용되어 있고, 통행방향 역시 좌측통행이었음을 보기 위함입니다. 한강철교가 복선화된것이 1912년에 B교 가설 이후긴 하지만, 이미 1905년에 복선구간용의 쌍신폐색기를 노량진까지 쓰고 있어 복선운행을 실시했던 것으로 생각되고 이후 철교 완성이후 용산까지는 확실히 복선이 들어갔을거라 생각됩니다. 즉, 일제 이전인 경부선 시절에 복선이 설치된건 확실하고, 대개 이렇게 건설된 배선을 마구 바꾸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 저 배선도로 미루어 이미 철도는 좌측통행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실물, 예를 들어 당시 쓰던 증기기관차나 운전관계 자료, 설비물품이 있었다면 이건 더 빼도박도 못하게 증명되겠지만, 불행히 그런게 없기는 한지라 어디까지나 추정에 그치기는 합니다만.
단선에서는 딱히 운행방향을 따질 일이 많지는 않지만, 보통 운행권한을 명시하는 표권을 취급하기 편한 방향으로 다니기 위해 교행시의 통상적인 운전방향이 정해져는 있었을거고, 이에 맞춰서 기관차의 기관사석 위치와 기관조사/화부석의 위치가 정해져 있을거긴 했을거긴 하고, 이걸 바꾸는게 불가능은 아니지만 성가시기 때문에 아마도 구한말 이래 변경이 없기는 했을거라 생각은 듭니다. 혹여라도 일제 당시에 운행방향을 바꾸었다손 치더라도 사실 일제 초반까지는 노선 숫자도 제한적인데다, 복선구간은 오로지 영등포~경성 정도에 한정되어 있고, 딱히 고도화된 신호보안장치나 설비가 있던 시대가 아닌 사람의 주의력에 의해서 돌아가던 시대라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거라 생각은 듭니다.
해방 이후에 철도의 운행방향을 딱히 손보지 않은건, 도로와 별도로 다니기 때문에 딱히 민감한 사안도 아닌데다, 1930년대 이후 복선구간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신호보안장치부터 시작해서 안전설비들도 그만큼 늘어나서, 운행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문제도 있었을겁니다. 이미 자동폐색식 신호기가 철도 연선에 설치되어 있었을거고, 이는 이미 운행방향에 따라 바꿔달기가 꽤 힘들었을것이며, 안전측선이나 건널선도 방향에 따라 설치되어 있었을거라 역시 상당한 난공사가 되었을겁니다. 단선구간이나 역 구내 등지에 설치된 자동식의 발조전철기 역시 통과방향이 정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바꾸는데 상당한 노력이 들어가야 할거였고. 안그래도 당장의 황폐화된 시설 복구에도 허덕이던 상황에서 통행방향 일치를 위해 투자할 여력이 있을리도 없었을겁니다.
다만, 노면전차류를 포함한 궤도는 이야기가 다른데, 일단 시가전차들은 도로를 공용해서 운행하기 때문에 자동차나 마차와 통행방향을 일치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반면 노면전차들은 신호에 의해 운전하는게 아닌, 말 그대로 육안에 의해서 운전을 하는 방식이고, 당시 존재하던 단선 구간의 경우 바톤터치하듯 통표를 주고받거나 교행예정 시각표와 육안에 의한 운전을 했을거라서, 자동 동작하는 발조전철기 동작방향 정도를 제외하면 큰 문제는 아니었을거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철도에 비해서는 통행방향 변경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을거고, 그렇게 전환이 되었을겁니다.
이후 궤도는 1968년까지 존속하다 폐지되었는데, 문제는 이게 서울시가 추진하는 지하철의 근간이 되는 사업이었다는데 통행방향 불일치의 근본 문제가 되었다 할겁니다. 1호선의 경우는 초기 추진 당시 철도청이 하냐 서울시가 하냐를 오가다 결국 서울시가 하되, 철도청 노선과 직결운행을 하는 형태가 되었고, 당시 10km도 안되는 노선 건설에 꽤나 재정부담이 컸던 사정상 토목비용을 대대적으로 부담하면서 서울과 청량리에 꽈배기굴을 넣을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후 구5호선 계획을 제외하면 국철과 직결계획이 있는 노선이 없고, 이들은 모두 궤도법에 맞출 생각이 만만했기에 신설동에 구태여 꽈배기굴을 넣고, 이후는 궤도로서 우측통행을 하도록 계획을 했던걸로 보입니다.
궤도법 자체에는 운전방향을 규정하는 규칙이 없고, 심지어 궤도운전규정 등의 하위규정에도 딱히 이런 규칙은 없기는 합니다. 다만, 궤도라는 것 자체가 도로에 부속된 시설물로 보는지라, 도로의 통행규칙에 종속되어 다니는 건 일종의 상식 비슷한 것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따로 언급이 없었다고 보는게 맞고, 실제 1962년 제정 도로교통법의 제3장은 차마 및 궤도차의 통행방법으로 규정되어있고, 해당 법 제11조 제3항에 차마의 우측통행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궤도에 대해서는 명시가 없지만, 예외적으로 도로의 측면에 설치된 궤도일 경우 이를 제외하고라고 되어 있으니 단선인 경우가 아니라면 이에 따라야 했고, 이후 지하철은 철도청 소관의 철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인지, 궤도사업의 후신이라는 이유에서인지 여기에 종속되어 우측통행이 유지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추정컨대, 서울시와 철도청 간에 지하철의 건설이나 운영관리에서 대립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에, 서울시가 철도청의 주장을 방어하는 논리로서 궤도가 인용되어 왔고, 그 결과가 지금에 이른게 아닌가 생각은 듭니다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못되는지라 추정의 영역에 머물러야 할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