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북부선 건설이 임박하면서 국제철도의 축으로서 동해선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야기가 좀 나오고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근래엔 좀 안풀리고 있고, 한 20년 넘게 대륙철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젠 러시아도 이걸 베이퍼웨어 정도로 받아들이는 그런 분위기까지 있지만, 어찌되었든 국가 레벨에서 건설사업을 실제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지금은 이제까지의 소극성을 많이 벗어낼 수 있는 기회라면 기회일겁니다. 지역에서 여기에 부응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건 반가운 일이지만, 좀 막연하고 덕담 만으로 접근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뭐 말잔치로 끝낼 사업이라면야 상관은 없겠습니다마는.
동해북부선은 1928년에 건설에 착수하여, 경원선 연선으로부터 남하를 시작했지만 실제로 공사 자체는 지지부진해서 부분개통 상태였고, 태평양전쟁에 끌려들어가서 북부선 중 묵호~북평~삼척간을 공사한 정도에서 끝났던 노선으로, 해방 이후에는 그나마 영동선, 삼척선은 실제 차가 다녔지만, 북부선은 명목상 영업선으로 유지되다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사실상 포기된 노선이었습니다. 덕분에 시설물 유구나 일제당시에 건설해둔 노반이 상당히 존재는 하지만, 실제 쓸 수 있는 구간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영업면에서의 가치 역시 암담한 수준이라 강릉~경포대 구간은 60년대 개통했다 10년여 만에 포기되어버리는 등 엄두조차 못내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일제당시의 동해북부선은 경제적 가치 자체보다는 지정학적 이유로 기획된 노선이 아닌가 생각은 듭니다. 30년대 초반까지는 제2의 종관철도이자 러시아 방면으로의 지름길이기 때문에 그래도 할 의사가 만만했지만, 이후 만주와 중국이 중요해지면서 우선순위가 내려갔고, 심지어 경제성이나 자원개발적 필요성 면에서는 우선순위가 떨어지는데다, 비록 내해라고 하지만 동해에 연해 있어 해양으로부터의 공격에 취약한 선로라는 약점이 있었기에 철광석 개발 등이 엮이는 안변~양양 이후 구간은 전시 긴급성이 있는 철암선 정도만 겨우 되고, 중앙선에 의해 대체가 되었던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지금에도 여전히 영향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고 말입니다.
동해북부선은 삼척, 동해 주변의 시멘트와 석탄을 제외한다면 사실 물동량이 대량으로 나올만한 공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제물류를 유치할 만큼 인구밀집지도 아니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항만은 비교적 일찍부터 개발되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무역항으로서의 가치보다는 광공업 수송에 치우친 그런 측면이 컸고. 또한 여객면에서도 연담도시권이 형성될만한 여건이라기 어려운 지형과 인구밀도였고, 개발연간에는 화물수송이 중시되던 지역이기까지 해서 철도가 이런 생활밀착성을 가지기 어려웠기도 합니다. 당장에 강릉선 완공 이전에는 강릉~동해간의 여객열차 시각표 구성이 정말 이용하기 나빴던 기억이 있었고 말입니다.
일단, 이런 환경 하에서 물류면에서의 가치는 컨테이너 통과 교통만 쳐다볼거라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해운에 비해서 철도 경유가 현재 그만한 가치가 나오느냐 라는걸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겁니다. 궤간 변경에 따른 환적을 한번, 그것도 조업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북한 영내에서 해야 할 판이고, 이후 여객조차 2~3일을 이야기하는 북한 평라선, 그리고 시설복구 전망조차 애매한 지선인 금강산청년선을 거쳐 남한에 이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생각하면, 수송단가에서는 연안 컨테이너선을, 속달성에서는 페리선의 컨테이너 영업이나 트럭 연계수송을 이길 가망이 별로 없을거라 봅니다. 그나마 기대볼만한건 애매한 선복량이나 러시아 항만들의 처리능력 한계 정도일거고 말입니다.
적어도 유의미한 물류수송이 유입되려면 북한 구간의 정상화와 시설 개량이 병행되고, 여기에 맞추어 경쟁력있는 수송 모드의 개발이 병행되어야 할겁니다. 적어도 북한 영내에 들어간 화차가 러시아 국경까지 24시간 전후로 도달할 만큼의 수송 정상화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일반 물류수송을 기대하기는 많이 어려울거라 봅니다. 벌크 화물, 주로 석탄이나 광물 같은게 차라리 당장에 여지는 있긴 하겠지만, 이런거 다니는 건 연선에서 별로 반가워 하진 않을거 같고 요즘처럼 탄소뿜뿜 극혐하는 시대에는 특히나 더 까일거라 정책적 우선순위가 나올거 같진 않습니다.
일단 물류는 네트워크의 설계 단에서 준비할 필요는 있기는 할겁니다. 다만, 이게 단순히 ICD같은걸 정비하는 수준의 사업이 되어봤자 별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당장에 강릉역 CY의 대체로서 옥계 CY를 설치했지만 몇년 전부터 사실상 휴업상태에 들어가 있는 판입니다. 보나마나 단가가 안맞고, 편도영업만 되는 판이라 그리 되었을건데, 이 상황에서 대규모 CY나 ICD를 유치한들 이런 상황이 일변하긴 어려울거라 봅니다.
그럼에도 이 네트워크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의 장기 구상이 있어야 할거라 봅니다. 일단은 철도가 아니면 수송이 난감한, 대량이면서 항만 경유가 그리 달갑지 않은 직송 물량 유치에 포커스를 둬야 할겁니다. 이런 수송에 대해 경유지, 통로로서의 동해북부선은 어느정도 매력도가 있는 시설이라는 점 역시 생각해 볼만합니다. 예를 들어서, 장기적으로는 부산권이나 수도권에서 트럭이나 트레일러 째로 적재해서 동해북부선을 경유, 러시아나 중국 내륙까지 직송하는 수송이나, 고가치 농산물이나 소비재의 직결수송 같은건 선박보다 경쟁력을 어느정도 확보가능하긴 할겁니다. 이런 구상에 맞추어 계획된 철도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의 밑그림,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의 준비사항을 마련하는게 긴요할겁니다.
일단은 이 기능에 관련된 두 선로는 강릉선과 춘천속초선 두 개라 할겁니다. 춘천속초선은 서울까지 외길인데다 단선에 급구배가 들어가는 선형조건상 결정적인 기능을 하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일단 가장 질러가는 루트라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릉선은 구배는 빡빡하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대용량의 루트이자, 계획된 철도망이 제때 된다면 경부선, 중앙선을 통해 종단, 횡단 어느쪽이든 프리하게 수요처에 도달할 만한 구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춘천속초선과의 접점이 되는 곳에는 직결하는 삼각선과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조차시설과 기관차 거점이 필수적이라 할거고, 또한 속초~강릉 구간에는 강릉시내 관통구간 및 강릉선의 악조건을 극복할 만한 도중 화물거점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객면에서는 수도권 출발 고속열차를 받아내는 문제 자체에 너무 매몰되기 보다, 지역 내 교통을 어떻게 기획하고 운용할지에 집중하는게 필요할거라 봅니다. 삼척에서 제진까지의 구간 합계가 약 170km정도, 여기서 전철화가 애매한 속초 이북구간을 빼고 보면 130km정도의 축선인데, 광역전동차가 다니기는 좀 길쭉하지만, 대신 현재의 누리로 차량이 구간화한다면 운용이 적절한 노선 연장에 해당합니다. 이 셔틀을 1시간 1왕복 정도 패턴으로 상시 운용가능할 수 있도록 선로용량을 확보해 둔다면 이 지역의 장래 발전에 상당한 기반이 될거라 봅니다.
이렇게 선로용량을 적절히 확보하기 위해 강릉~속초 사이 구간에서 추가 교행역을 사전에 확보해 둘 필요가 있고, 또한 공사 과정에서 주문진~남강릉 구간의 복선화를 일시운휴를 각오하고라도 추진해 두어야 할거라 봅니다. 특히 복선화가 정말 긴요한데, 현재 단선 대심도 별선안은 역 공사도 상당히 난감할 뿐더러, 구배조건이나 역 접근성도 나빠져서 물류선으로나 여객선으로나 모두 최악의 대안이 될거라고 봅니다. 비용면에서도 생각만큼의 절감효과가 나오기도 어렵지 않나 추정이 되는 대안이기도 한데, 차라리 강릉선 영업에 대해 1일 단위 운휴를 대여섯번씩 집중해 하고, 남강릉 임시승강장을 설치해서 대행수송을 하더라도, 완전한 복선화 안을 추진하고, 필요하다면 역의 리모델링 개량을 검토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현 선로 조건의 복선화가 이루어진다면, 구내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사천진 정도에 기관차 교체가 가능한 소규모 조차시설을 설치해서 여기서 화물열차의 기관차를 바꾸어 지하구간을 넘겨주거나 대피 등을 수행하는 식으로 운용하면 될겁니다. 강릉선 방향이라면 서원주까지 직행하는 운용을 하고, 동해선 방향이라면 동해역 정도까지 가는 조건이면 적절할거고 말입니다. 여객열차의 경우 강릉역의 확장이 어렵다면, 반복을 이 조차시설까지 끌고와 버리면 될거고 말입니다.
장기적인 구상 없이 당장의 예산과 사업편의를 가지고 만들어놓다 보니 강릉구간은 정말 이도저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고, 지금에 와서는 과거 남강릉역 구상 시절의 물류용 대우회선도 안나오고 정작 핵심시설인 강릉역은 도시철도역 수준의 단촐하기 그지없는 반지하역으로 지어져 버려서 대간선의 거점역으로서는 그야말로 불만족스럽기 그지없다 할겁니다. 이제라도 전략적, 장기적 구상을 바탕으로 단기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좀 더 제대로 된 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