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건축, 토목사 쪽에서 기술발달사 위주로 다루다 보니 소소한 철교, 고가들은 그리 관심을 받지 못하는 편입니다. 수도권에서도 한강철교라는 워낙의 역사적인 철교가 있는 편이고, 이외에 시사성이 있던 당산철교나 당대의 특수교량 취급이던 잠실철교같은 지하철 교량이 좀 알려진 편이며, 1호선의 상징과 같은 구로고가교 그룹정도가 좀 인지도가 있는 케이스지, 나머지는 지역에서도 정확한 이름을 알기 어렵고 인지도도 그리 없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점에서 규모나 역사적 의의에 비해 이름이 안알려진 철교가 이 안춘천 철교라 할겁니다.
사실 이 철교가 의미가 큰게, 역사적으로 보면 1899년 경인선 개통시에 이미 존재하던, 최초로 부설되었을 대규모 철교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경인선의 경우 미국 스타일의 토목공사물량을 최소화한 표준궤 철도로 설계되어서, 나중에 일본측이 인수하면서 구배나 곡선을 완만하게 고친걸 빼면 전 구간이 토공에 의해 건설된 철도입니다. 지금도 터널이 단 한곳도 없을 뿐더러, 고가나 도로교차 구간 대부분은 복복선화 이후에 정비되었고 대개 과선교 형태로 정비될 만큼 교량이 드문 편입니다. 개중 시설 규모로 봐서는 한강철교 다음의 대규모 교량이 이 안춘천철교입니다. 교량 이름조차 안양천이라는 본류가 파악되기 전에 매겨져 옛 이름인 안춘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시피 한것도 그런 이유라던가.
위치상 그만큼 요지에 있다 보니, 복선화와 복복선화를 거치면서도 별다른 개량 없이 구 교량이 그대로 남겨져 쓰이고, 주변에 계속 시설이 덧대진 그런 면이 있습니다. 복선화가 실시된 1965년경에 같은 상로식 철제 거더교 하나가 더 부설되었고, 이후 복복선화를 하면서 교량 상부를 입체교차하는 하2선 고가교와 구 철교 남쪽에 콘크리트 거더 방식의 하1선 교량이 지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로1동 지역 집단민원으로 구일역이 지어지면서 철교 사이에 승강장이 설치되었고 교량위라는 특성때문에 방풍 쉘터 구조로 승강장 상부를 둘러쳐 놔서 사실상 교량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냥 역이라고 생각하지 옛 철교가 있을거라고는 밖에서 봐서는 알기 어려워졌달까. 이젠 승강장 안전문까지 설치되어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1선 승강장에 올라가기 전에는 역을 이용하면서도 이 낡은 철교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열차를 타고 가면 그 존재감은 확실히 느껴지는데, 경인선 통근을 근래 자주 했던 사람이라면 안춘천철교를 건너면서 들리는 철제 교량 특유의 소음을 듣고 서울 시내에 근접하고 있음을 공감각적으로 느꼈을 겁니다. 이 소음이 또 그만큼 민원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기도 했을거고 말입니다. 여기에 기술적으로도, 구식의 무도상 철제 거더교는 유지보수에 손이 많이 가는 편이기 때문에 경인선의 막대한 열차통행량을 받아내느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갔을 시설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개량 공사가 상당히 늦게 이루어진건 대규모 공사가 경부선 안양천 철교에서 진행중이던게 있어서 자원과 인력 배분의 문제가 있던것도 있었고, 또 전차선이나 구일역 승강장 구조물 때문에,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옆에서 밀어넣어 구교를 대체하는 검증된 공법을 쓸 수 없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과거 방식으로 철도기중기를 2대를 써서 조립식으로 부설 가능한 거더를 1:1로 교체하는 방식을 쓰거나, PSM공법 같은데 쓰던 것과 유사한 교량가설용 철도기중기를 쓰는 방법이 쓰일 수 있겠지만, 운행중지를 장시간 할 수 없는 중요 통근노선이고, 또 교량용 철도기중기는 우리나라에선 쓰이질 않았기 때문에 대안이 되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온 방식이, 기존 철제 거더 위에 콘크리트체 신규 거더를 올려서 고정시켜 두고, 하부의 철제거더를 절단해 아래로 유압재크로서서히 내리면서 신규 거더를 교량에 안착시키는 공법이었다고 합니다(기사 링크). 굉장히 창의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만큼 난이도가 있는 방식이었고 그래서인지 공사를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진행을 한걸로 보입니다. 여기에다 워낙 중량물이다 보니, 인접 부지에서 콘크리트 거더를 제작해서 투입하는 식으로 시공을 해야 했기에 이 거더 제작공정 시간동안은 시공이 안되고, 여름철에는 물이 불어나서 하천 위에서는 공사 진행을 할 수 없는데다, 또 작업시간 문제 때문에 주중에 진행을 못하고 주말에 1시간 정도 열차시간을 단축해서 해야 했기에 2년이 넘는 공사가 되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번 개량공사는 사실 꽤 규모가 있는 공사기도 하고, 기록화할 가치가 있음직 한데 딱히 그런 움직임이 없는 건 아쉽습니다. 그나마 마지막에 현수막을 내걸어 이런 역사적인 사항을 알리고, 철거한 마지막 거더를 보존처리한다는 소식이 있는건 다행입니다만, 좀 더 종합적인 홍보와 알림이 없는게 조금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입니다.
P.S.;들리는 말로는 이번에 철거한 리벳 조립식 철교가 미국제 1906년 명판이 붙은 거였다고 하는데, 연도가 좀 안맞는 거라 재미있긴 합니다. 구 경인철도 주식회사시절에는 한강철교를 제외하면 전체가 목조 교량, 아마도 트레슬이었을걸로 생각되는 걸로 건설되었고, 이후 설비가 너무 빈약하기에 메이지 40년(1907년)에 개량공사에 착수해서 메이지42년(1909년)에 개량을 완료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산확보 이전에 교량, 그것도 외자물품을 그렇게 했을리는 없을거고, 아마도 다른데 부설된 것을 유용해 왔을거라 생각되는데, 경부선이나 경의선에 쓰기 위해 발주한 것을 돌려막거나 하지 않았을까 추정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