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내용 중 3km나 그냥 달렸다고 하는 걸 문제시 하는 모양인데, 이건 정말 철도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할만한 소리라 생각됩니다. 철도는 고속으로 갈수록 비상제동 거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0km/h 정도의 속도에서는 5m정도에 정차하는게 가능하지만, 보통 전동차들의 최고속도 사양인 80~110km/h에서는 비상제동을 동작하고도 600m정도까지 밀고 나가고, 화물열차라면 그정도 속도에서 1km이상을 밀고 나가게됩니다. KTX의 경우는 300km/h에서 비상제동시 3.3km의 제동거리를 가지기 때문에, 저 경우에는 차축이탈로 제동장치의 공압누설이 생기거나 기장의 비상제동 취급을 적시에 해서 제대로 멈춘 경우에 해당합니다. 다른 차축의 이탈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경우라서 운이긴 합니다만, 설계한 대로 제대로 동작을 한 경우라 봅니다.
사고원인은 사고이후 하루이상 지난 지금에도 불명확한 걸로 보입니다. 초기 보도에서 낙하 구조물을 충격했다는 보도가 있어서 기장의 진술을 조기에 확보했나 생각했는데, 승객 신고 내용에 기반한 이야기였던 걸로 보입니다. 다만, 비래물이 문제인지, 차량결함의 문제인지는 추후 조사를 더 지켜보기는 해야 할걸로 보입니다. 후자라고 하기에도 석연찮은 부분들이 많은지라.
차량결함이라고 정부측에서 잠정적으로 판단을 하는건 다른 대차의 탈선이 전혀 없는 점과, 영상에도 나오지만 탈선해서 튀어나간 윤축의 차륜이 깨져나간 부분에 근거를 하는 걸로 보입니다. 통상 차량결함에 의한 탈선인 경우는 축 베어링 열화로 인한 축받이 접촉부 전후의 절손, 윤축 조립체중 차축이나 차륜의 결함 확장으로 인한 파괴가 다수고, 드물게 대차 부분의 기계적인 결함, 피로누적으로 인한 파괴나 변형으로 인한 이상진동 같은 걸 드는 편입니다. 차륜 결함 사례는 사실 이전에 화물열차에서는 몇차례 있던 경우였기 때문에 일단 초기판단은 여기로 집중이 되는 거라 생각됩니다.
다만, 이렇게 두고 이야기를 해도 정비불량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폐는 있다고 생각은 됩니다. 화차의 경우 워낙 숫자가 많고, 기기도 꽤 거친 물건인데다, 일단 사람이 타는게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비, 관리가 느슨할 여지는 있습니다. 실제로 전라선 익산~신리간의 차륜파손 탈선이나, 호남선 익산~황등간 축절손 탈선, 경부선 신탄진~매포간 컨테이너 열차 탈선전복같은 사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여객차량의 경우는 더 까다로운 정비체계 하에서 운용되는데다, 답면제동과 통상적인 공기제동장치에 의존하는 화물열차와 달리 전자제어식 제동이나 디스크제동을 주력으로 쓰는 편이고, 그 동작도 꽤 섬세한 편입니다. 물론, 영등포~신길간 저항제어차 탈선 사고가 축 절손에 의해 발생한 경우긴 한데, 이 경우 사고의 직접원인은 아니긴 했지만, 사용된 베어링이 초저항 차량에서 유용해 왔던, 아마도 철도청 시절의 동류전환 관행하에 쓰였던 그야말로 '철도청의 유물'이었던 경우였고, 차량 자체도 차령 20년 이상이 경과한 노후차량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번에 발생한 차량은 개중에서 가장 비싸고 엄격한 관리, 정비체계 하에서 운용되는 고속열차인데다, 도입시점도 2017년에 들어온 경년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차량이라는 점입니다. 신형 설계의 차량도 아닌 10년 이상된 산천차량의 설계를 개선해 나온 차량인 만큼 개별 기계장치도 설계가 충분히 안정되어 있는 차량인데, 이번과 같은 사고가 났다는 점에서 굉장히 기이한 케이스라고 생각이 됩니다. 만일 정비부실에 의한 사고라고 하면, 더 가혹하게 운용되었고 초기엔 사행동 같은 문제까지 심하게 겪었던 산천 차량들에서 먼저 이상징후가 있었을거라 생각되는데, 정작 한 차량에서 단 1개소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블랙스완에 가까운 사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정비과정에서 이상징후를 놓쳤을 가능성도 다분하기는 합니다만, 그런거 치고는 굉장히 전격적으로 생긴 경우라는 느낌이 강하달까.
비래물, 아마도 강철제 또는 경도가 상당히 높은 돌 종류일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고 생각은 드는게, 진행방향 앞쪽에서 뭔가 접촉, 타격한 흔적이 있다는 보도도 얼핏 보였고, 아마 진행방향 뒤쪽일 수도 있지만 동력차의 루버 부분이 파손된 영상도 확인되기 때문에 사고조사가 좀 더 진행되어봐야 결론이 나올걸로 보입니다. 다른 차량이 멀쩡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배제되기는 합니다만, 선두차의 어떤 부위에 접촉한 이후 터널벽에 되튕기거나 차체 하부와 궤도부 사이를 튕겨다니다 4호차 대차 차륜을 가격하고, 차체에 박혀들어가 있을 가능성도 있긴 한지라. 일단은 가능성은 아직까진 열려있다고 봐야 할겁니다.
사고 수습 면에서는 초기 정보전달이 오락가락 했던게 비판을 받고 있긴 한데, 이번 사고는 상당히 이례적인 사고기도 한데다 상황판단이 중간에 바뀌기도 했고, 또한 위치도 역 사이에 위치해서 차라리 인접한 경부선 영동역에서 비상출동을 하는게 더 접근이 빨랐을 상황이기까지 했습니다. 또, 고속선의 경우 임의로 선로에 내려서서 상황파악을 할 수도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사고의 상세를 파악하는데 까지 시간소요가 어느정도 있을 수 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예상복구시간이 늦은건 좀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광명역 탈선이래 10년 가까운 시간만에 벌어진 일인데다, 사고 지점도 구원용 장비가 도달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3km 가까이에 걸친 시설복구가 걸렸을 지점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던 부분이 있다고 생각은 듭니다. 기존선이나 역 근처였다면 좀 빨리 마무리가 되긴 했겠습니다만.
장래 시설개량에서 남부내륙선의 관련사업으로 김천 연결선이 검토중인데, 사업기획이 어찌되었든 조기에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번 사고 수습에서 시간이 상당히 걸린 부분중 하나가 대전~동대구 구간에는 보수작업용 비전화 장비출입선 외엔 연결선이 없다보니 사고차로 인해 고속선상에 고립된 열차들을 꺼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 부분이 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그나마 심천역쪽에서 기중기나 구원용 기관차가 들어갈 수 있었고, 일단 영동보수기지 구내에 사고차를 유치해서 응급수리를 할 공간이 있었기에 망정이었다던가 그렇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영업중이던 열차를 꺼내는 건 무리였기에 동대구까지 되돌아가서 일반선으로 올라와야했다고 하니, 김천 연결선이 있었다면 이 부분은 좀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거의 쓸일이 없어서 필요한가는 좀 애매하지만, 영동보수기지~심천 간의 단선 인입선로에 전차선과 신호설비를 설치해서 비상시의 고속선 열차를 경부선으로 빼 올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시설용 기지 구내에 전차선을 두는게 부담이 크기는 하겠지만, 뭔가 트러블이 났을때 열차를 반대방향으로 빼기 보다는, 순로 방향으로 이탈시킬 수 있는게 수습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기는 할거라 생각됩니다. 마침 현재 대전~동대구 사이에 계획되거나 설치된 연결선 중에 서울방향으로 나 있던건 기 폐지된 옥천연결선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부산방향인 만큼, 비상자원으로서 겸사겸사 개량사업을 해볼 가치는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