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야기되던 장대화물화나 2층화의 논리는 대체적으로 합리적인 이야기긴 합니다. 철도물류는 기본적으로 대량수송을 통한 효율화가 사업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으니, 이를 위한 기반 시스템을 갖추는게 바람직하다 할 겁니다. 문제는, 이걸 하는데 있어서 시설이라는 제약요건이 있다는 점이고, 장대화물화나 2층화 모두 이 제약요건의 벽에 걸려서 돈좌된 구상이라는 점입니다.
2층화의 경우는 전용의 화차와 컨테이너에 의한 수송을 검토했었지만, 기본적으로 유지보수성이 나쁘고 시설 부담이 커지는 3축+장축거 화차라는 점에서 일단 문제가 있는데다, 로 프로파일 컨테이너를 따로 보급해야 한다는 시점에서 하역, 창고, 해운업계까지 걸려들어가는 국제적인 프로젝트가 되어버리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사업이 되어버린 감이 있습니다. 주요 국가 철도회사들이 얼라이언스를 짜서 덤벼도 하기 어려운 사업에 가까운거라.
결국 이 방향은 시설투자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경부선의 재조달 수준으로 일을 해야하는 시설투자가 전제되는 방향이 되어야 했기에 아무래도 무리가 만만이었다 할겁니다. 이때 대안으로 볼 수 있는건 신규투자의 활용, 그러니까 남부내륙선이나 중부내륙선 사업을 2층화+장대물류선으로 만드는 거였지만, 이건 지역이해관계와 정부의 재정절감 욕구가 맞물리면서 사실상 틀려먹은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말입니다.
이번에 나오는 장대화물열차는 그나마의 대안이라면 대안일겁니다. 물론 각역의 유효장을 잡아늘리는 문제는 무려 10여년 전에 시도했다가 예산당국이 막아세우면서 사실상 끝장나버렸기에 이번에는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은 많습니다. 50량+중련기관차라면 최소 800m의 착발선로 유효장이 필요한데, 이 길이는 KTX-1 2대보다 약간 짧은 정도의 장대한 길이입니다. 수도권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일 뿐더러, 경부선 상에서 이정도의 선로가 확보될만한 곳이 있을지 많이 걱정되는 숫자랄까. 그래도 과거의 구상처럼 터널과 전차선을 전면 재조달 하기 보다는 좀 용이하고, 일단은 가능성은 있다고 볼 수는 있긴 합니다마는.
개인적으로는 유효장 확장을 하는 역 숫자 외에 좀 더 추가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은, 미국처럼 사실상의 제3선 구조를 경부선의 급구배 구간 등지에 만들어 넣는 식으로 장대화물열차의 대피나 지장 문제를 해결해 보면 어떨까 하는 점입니다. 경부선에 예정된 개량사업 등과 결부할 수 있을거라 보는데, 급구배로 악명높은 남성현 구간이나 추풍령 구간, 천안~회덕 등과 같은 구간에서 선형이나 구배 개량에 부대해서 3선을 일부 확보해서 통상적인 화물열차나 장대화물열차가 여객열차를 피해주거나, 차량 트러블 시의 대피 내지는 우회선로로 유용하는 걸 생각해 볼 수 있을겁니다. 이 경우 유효장 확보 문제를 어느정도 회피할 수 있는데다, 선로용량 증강과 운전의 항상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번 시운전은 중련 견인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개인적으로 무선제어 방식을 적극 도입하여 동력거점식의 열차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80량이나 100량 견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동력거점식이 된다면 제동동작의 반응성도 끌어올릴 수 있고, 열차 중간이나 후부에서 제동계통등의 동작상태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차가 늘어나니 그만큼 안전도도 개선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중간 보기방식을 취한다면 여객열차처럼 복합열차화 해서 운전을 할 수 있을거라 그만큼 화물열차 운용의 융통성도 살리는게 가능해질거고 말입니다.
특히나 무선제어 방식의 도입은 장래 서해선 통과화물 등과 같이, 급구배, 지하구간, 과밀운전 등의 극단화된 운전조건 대응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 봅니다. 단순히 구배가 심한 경우라면 중련기를 투입해서 다니면 되겠지만, 지하구간의 경우 제동이나 구동계통의 고장은 굉장히 치명적이고, 또한 전동차와 함께 다니는 만큼 과밀운전 조건에서 잦고 급작스러운 가감속 능력이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수도권의 “험로”를 뚫어내기 위해서는 구간 진입역에서 무선제어가 가능한 보조기관차를 적소에서 연결, 해결하는 식으로 운전을 설정하는게 요구된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보조기관차 사업을 위해서 승무인원을 늘리는 것은 부담일 수 밖에 없는데, 무선제어를 적용하고 원격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식으로 대처한다면 생산성 문제를 완화하는게 가능할겁니다. 물론 보조기관차에 사람을 태우냐 마냐는 노사간의 문제로 이어지긴 하겠습니다마는, 차량쪽에서 총괄제어 중계능력을 화차에 부여하고, 이 결선을 위해 차량계원이나 수송계원의 업무부담을 늘리지 않는다는 차원에서는 적극 개발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화차 자체가 “스마트”해 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유럽에서는 샤펜베르크 연결기와 일체형 전기 커플러를 결합해서 화차에 적용하는 디지털 자동 연결기(DAC)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원격에서 연결기와 제동장치의 체결과 해체를 제어할 수 있고, 전기와 통신이 제공되니 차량의 동작상태 모니터링 기능을 제공하고, 또 화차의 차적이나 사양 정보를 기관차 등에 전송해서 조성내역 같은 정보를 자동화하는 것도 가능하게 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유럽각국이 이해관계 때문에 19세기 이래 해내지 못한 연결기의 개혁을 해낼 수 있을지는 두고볼 일이겠습니다마는, 우리도 이런 방향의 “스마트”한 화차를 개발하는게 필요하긴 할겁니다. 반드시 저런 고도화된 자동화 완성품이 아니라도 중간적인 장치나 기술을 만들어 볼 수는 있을거고 말입니다.
10여년 동안 사업성과 투자부담으로 돈좌되어 왔던 화물의 생산성 향상 기술이 과연 실용화 될 수 있을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두고 볼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