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여객철도의 선봉이라 할만한 동부의 펜실베이니아 철도가 파산하고, 각 철도회사가 심각한 누적적자로 여객철도 수송의무를 어쩌지 못하고 있을 시절에 정부가 개입해서 이들 부실부문을 인수, 통합하여 1971년에 만든게 앰트랙입니다. 이후 채산성이 있는 화물철도는 파산회사 정리 등을 거쳐 민간회사가 운영하는 채로 놔두고, 비채산인 장거리 여객철도는 원칙적으로 앰트랙의 전업 형태로 화물철도회사로부터 선로를 빌려서 운영하되 연방정부가 그 결손을 보전하는 식으로 구조조정이 되어, 미국 철도정책의 기본 구조가 됩니다. 그런데, 여객전업회사가 화물철도를 운영했다니 좀 기괴하다 할 수 있을겁니다.
사실 앰트랙이 화물을 전혀 운영할 수 없진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여객에 부수한 각종 부대소화물과 우편물의 수송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실제 71년 출범 당시에도 각 철도회사로부터 이런 소화물과 우편차를 인수받아 초창기의 운용차량들에 포함하기도 했었습니다. 다만 이 사업은 그냥 있던 차량으로, 있던 서비스니까 굴린다는 정도에서 유지되던 정도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90년대 들어서 급변하게 됩니다. 고 즈음에 일본의 민영화나, 영국, 스웨덴, 독일의 철도개혁이 이슈가 되고 있었고, 그 영향으로 비채산성이 극히 악화되고 있던 앰트랙은 재정낭비의 한 사례로 상당한 공격을 받게됩니다. 물론 민영화 주장은 약방의 감초처럼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말입니다. 이 즈음에 한국의 철도청도 공사화나 민영화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 당시에는 미국의 이슈들이 수입되어 논쟁이 꽤 강화되던 그런 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쓰던 터널마크를 대체해서 앰트랙 마크와 비슷한 CI가 도입되기도 했었고 말입니다.
이런 압박 하에서 앰트랙의 경영진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새로운 사업 확충에 올인하게 됩니다. 90년대 내내 고속철도 도입을 검토하면서 스웨덴이나 독일의 고속철 차량을 대여해서 국내 시험운행을 하고 2000년에 기존선 기반의 고속철도 아셀라를 런칭한 것도 그런 배경이 있겠지만, 특히 공격적으로 수익성을 기대하며 사업확장을 한건 바로 화물사업... 이었습니다.
전업 화물사업을 하는 것은 당연히 자기 선로가 오로지 북동부 회랑(NEC) 외엔 없는 앰트랙으로서는 상당한 월권이긴 했지만, 여기에서 제도적 개구멍을 적극 활용하는데, 그게 바로 소화물과 우편이었습니다. 즉, 여객열차에 결합해서 취급한다면 이것은 어쨌든 화물열차가 아니라고 우길 수 있었던 모양이고, 이 논리가 먹혔는지 어쨌는지 각 화물철도회사의 우려를 뒤로 하고 그렇게 사업을 개시하게 됩니다. 여기서 단순히 소화물차(Material Handling Car)를 증비해서 수송하는 정도였다면 더 심한 논란은 나오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유개화차와 냉장차를 대거 도입해서 여객열차의 후미에 붙여 운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유개차는 그렇게 1997년 초두부터 도입된 차량이었다고 합니다. 소화물차와 달리 전원공급선이 없어서 여객열차의 앞쪽에 붙일 수 없는 그야말로 일반 화차와 동일한 물건을 대거 굴리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이것도 모자라서, 로드레일러라고 불리는 트럭의 트레일러에 철도용 대차를 붙여서 화차처럼 쓰는 특수운송차량까지 대거 도입해서 공격적으로 화물영업을 개시하게 됩니다. 이정도쯤 되면 명목으로라도 소화물(Less-than-carload)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지경에 이른 셈입니다.
이쯤되면 기존의 화물철도 회사입장에서는 막하잔 이야기로 받아들일만 했고, 결국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가 되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운영상의 문제도 만만찮았다고 하는데, 저렇게 여객열차에 덕지덕지 화차를 여럿 붙여서 다니다보니, 이걸 취급역에서 인계하기 위해서 입환을 실시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정차시간을 상당히 까먹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여객입장에서는 안그래도 항공편 보다 느려빠지고, 버스보다 호되게 비싼(그래서 이용객 층위가 분리되기는 하지만) 열차를 기껏 탔더니 소요시간이 한량없이 늘어지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겁니다. 게다가, 입환 작업은 꽤 거칠고 트러블의 가능성이 있다보니 정시성을 까먹거나 심지어 결행 문제까지 번지는 판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그렇게 비난을 사던 사업은 이런저런 부담이 있다보니 사장이 바뀌고 나서 2003년에는 대거 정리수순을 밟게 됩니다. 저렇게 사실상의 화물열차처럼 굴리던 케이스를 정리하기 시작해서 2006년경에는 완전히 일소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수화물 사업을 전부 정리한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수화물이나 소화물 수송 자체는 남아있고, 최대 팔레트 단위로 취급하는 물량까지도 접수를 받는다고 합니다. 근래 코로나로 일부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는 듯 합니다마는.
사실 어느 나라나 국영 내지 공영으로 유지되는 철도는 순수하게 수익사업 기반으로 굴러가는 경우는 잘 없고, 대개 어떤 형태든 보조금에 의존해서 국가나 지자체 등 공공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굴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거지로 수익사업을 잘라내서 별도회사로 하고 나더라도, 공공적 이해차원에서 운영 존속이 요구되는 적자사업은 남겨지게 마련이고, 결국 이건 정치적 타협이 되건 뭐가 되었건 재정사업적 성격을 가지고 굴러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사업은 늘 민영화에 집착하는 변질자들에게 늘 공격대상이 되고, 그러다 보면 궁한 와중에 이것저것 공세적으로 사업확장을 벌리는 행태를 보이게 됩니다. 이걸 또 잘하는 짓이라고 그 변질자들이 떠들어대는 경우도 많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사업확장이라는건 결국 민간의 영역, 또는 수익사업의 영역을 건드리는 경우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서 돈도 있고 이익이 직접 걸린 '민간인'이 있는 쪽은 반드시 '공공'을 모든 수단을 써서 축출하려 드는게 보통이고, 이건 결국 정치적 귀결로 가게 됩니다. 이 와중에서 대개 공공의 리더십이 가진 의지가 민간이나 정치를 이기기는 쉽지 않은게 역사적인 보편례라 할 수 있습니다. 위 앰트랙의 사례 역시 비슷한 귀결이 된 경우라 할거고 말입니다. 뭐, 정작 앰트랙 민영화 이야기는 입법을 하네 마네 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또 쏙 들어가버렸다는게 함정이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여전히 한입 두입씩 공공의 축출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과연 이번에는 또 어떤 신묘한 경영개혁안이 나오고, 또 어떤 민간우위 이론이 나올지 궁금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