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 하면 주기적으로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KTX 왜 영등포 정차 안시키냐는 이야기일겁니다. 영등포역이 서울 서남권이나 멀리는 경인선 연선에서의 수요가 집중되는, 비록 전동열차 외엔 시종착이 없다시피한 역이긴 하지만 사실상의 터미널이라 할만한 볼륨의 이용규모가 나오는 역이기는 합니다. 과거 새마을 전성기 시절의 정차역 기준으로도 현재 KTX의 수혜를 못받는 역 중 하나가 영등포기도 하고, 과거 정차 요구가 꾸준했던 역이어서, 수원경유 한정이긴 해도 정차가 이루어지는 중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 열차에 가까운 정차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은 종종 이야기가 나오는 그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실 영등포 정차가 무리수가 있는 이유는 다이어그램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미 영업적으로 컷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조건이기는 합니다. 일단 영등포~용산/서울 간의 승차율이 영등포정차로 확 늘어날 수 밖에 없으니 실효운임 기준으로 100~200원 정도의 감액이라고 하더라도 매출감소가 발생하는 문제가 생겨버립니다. 즉, 정차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게 아니라 수요를 잃어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단 이야기가 됩니다. 지방과 달리 교통의 불비 문제가 거의 없는 서울에서는 구태여 도중 정차를 통해 교통편익을 늘려주는게 딱히 수요로 연결될 여지가 적기도 하고, 또 더 나아가서 방대한 수요가 있는 서울 일대에서 중거리 열차편의 수요까지 KTX에 집중시켜서 수요편중을 야기하는게 사회적인 면에서도 그리 이득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등포역 자체가 그리 설비가 풍족한 역은 아니라는 한계도 있습니다. 영등포역의 간선열차 승강장은 고작 2면 4선으로, 여기서 나가는 계단은 2개소에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1개소 정도로 승하차객을 처리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서울역도 각 승강장의 조건은 비슷하지만, 대신 간선열차 승강장 숫자가 6면 12선으로, 이중 경부선에 주로 쓰는 승강장을 한정해서 보더라도 대략 4면 7선 전후가 확보가 됩니다. 여기에 호남/전라선 착발의 용산역도 3면 6선이 확보되어 있는 걸 생각하면 승하차가 집중되더라도 1개열차가 도착한 시점에 대량의 승객이 내려서 발생하는 그정도의 혼잡이지,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혼잡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등포의 2면4선에서 서울/용산에서 처리하는 총 7면 13선이 취급하는 승하차객을 받아내야 한다면, 수요분산 조건이 있다 쳐도 그 40~50% 정도의 수요를 받아내야 한다 치면... 그 왕년의 시쳇말로 혼돈 파괴 망각이 일어나기 좋을겁니다.
이래도 해야하는 거 아니냐...라고 한다면 처음에 인용한 서울~수원간의 열차 다이어그램을 되돌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0시에서 11시에 하행 12편(복합열차는 1편으로 계산)해서 쏘아대는, 평균 시격 5분에 달하는 다이어에 임시열차나 화물 1~2회까지 끼워넣는 극악한 다이어운용이 사실상의 한계운용에 가깝다 볼 수 있고, 대충 그보다 루즈한 9~10편 정도가 평소의 운용 쯤 되는 눈치입니다. 도카이도 신간선 2020년 다이어 기준으로 최대한 우겨넣는 다이어가 12-2-3 패턴이라 불리는 노조미 12편, 히카리 2편, 고다마 3편의 하행 편도 17편 운용인데 이건 정말 피크시간 대에 입출고 회송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계절, 임시열차까지 다 잡아넣는 숫자쯤 되고 통상적으로는 10~13편 정도가 다니는게 통례에 가깝습니다. 즉, 전용 고속선에 단일 사양 전동차, 고급 신호체계 하에서 상시 운용하는 거에 맞먹는 열차횟수를 혼합교통구조의 기존선에서 내고 있는 극악한 조건의 운전을 하는게 한국의 경부선에 걸리는 부하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과밀 다이어를 운용하는 핵심이 가장 열차가 몰리는 용산~금천구청 사이에 있는 착발선로를 분산시켜서 최대한 우겨넣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서울역에서의 출발열차는 피크에도 8회 정도, 약 8분 시격 정도의 어느정도 상식에 가까운 배차간격이 나오지만, 여기에 용산에서 4회의 착발을 끼워넣어서 그 틈서리를 메꿔넣고, 또 KTX가 집중 착발하는 시간을 피해서 일반열차를 띄워다 영등포에 대피를 잡아놓는 식으로 다시 그 틈을 채워넣는 식으로 그야말로 복선 하나에 열차들을 최대한 "우겨넣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우겨넣은 열차들을 다시 금천구청에서 일반선과 고속선으로 갈라쳐내면서 다시 틈을 벌리고, 광명역에서는 통과선과 2개의 착발선으로 통과와 교호발착을 끼워서 4~6분 정도의 간격으로 오는 열차들을 받아내면서 고속선으로 띄우는 정리를 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여기에다 일반열차가 만드는 틈서리를 활용해서 통한의 광명셔틀을 시흥연결선에 집어넣는 건 그야말로 묘기에 가까운 운용이라고 해도 그리 과한 표현은 아니라 할겁니다.
이런 운용조건에서 영등포 정차를 관철하게 되면, 우겨넣기의 기본 전제 하나가 무너지게 됩니다. 일단 일반열차의 이용패턴을 보더라도 승강장 하나당 2~3분의 정차시분을 할당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가감속 시간까지 감안하면 정차 하나로 4분에서 5분까지의 지장요소가 생기게 됩니다. 영등포역의 승강장을 최대한 활용해서 교호발착을 실시하고, 신기에 가까운 선로전환기와 신호기의 운용으로 절체시간을 수 초 단위로 억제한다 하더라도, 4~5분의 절반, 대충 3분 정도의 지장시간이 생깁니다. 이래가지고는 용산이후 구간에서 최빈 2~3분, 보통 5분 정도의 열차 간격을 유지시키는 건 ATP(ETCS Lv.1)의 기술사양인 약 120초의 최소배차간격으로는 어림도 없고, ETCS Lv.2의 기술사양인 약 90초를 들이대도 각이 안나오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정차를 하는 순간 선로용량은 확실히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된달까.
물론, 과거 전설적인 과밀선구, 그리고 전동열차 운전노선에서 잘 쓰였던 평행 다이어그램, 즉 전열차가 동일한 운전패턴과 정차역 패턴을 가지는 시각표로 굴린다면 더 우겨넣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실제로 이론적으로는 이게 가장 선로용량을 최대한 뽑아내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문제는 이걸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운행하는 열차의 동력성능이 최대한 균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KTX는 물론이고 KTX-산천, ITX-새마을, 무궁화호, 일부 전동열차와 화물열차까지 모두 동일한 운전패턴 하에서 운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현실적으로는 좀 어려운 이야기에 가깝고, 설사 무궁화호를 도태시키고 ITX-새마을 정도의 운전성능을 충족하는 열차로 채워넣고 화물은 아주 예외적으로 틈을 만들어 굴린다 하더라도, 일단 영등포역에서 정차시분을 단축하지 않는 이상에는 정차로 발생하는 지장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열차간격의 압축은 지난한 이야기가 됩니다.
즉, 현재 수준의 과밀운행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시설을 극단적으로 효율화시켜서 고상승강장에 복수의 맞이방과 계단/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서 승하차로 인한 지연시간을 최대한 압축시키거나, 영등포역을 고속선상의 통과선이 있는 2면4선 구조 내지는 전열차 정차의 3면 6선 정도로 확장해서 승차차 지연이 어느정도 걸리더라도 최대한 정차열차를 분산시켜서 역 정차와 통과에 걸리는 지장시간을 분산시키거나 해야 정차열차를 충분히 늘릴 수 있단 이야기가 됩니다. 어느 쪽도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고 아주 오래걸리거나, 기술적으로 엄청난 난이도가 걸리는 그런 사업일 수 밖에 없달까.
결국 KTX의 영등포 정차문제는 영업적으로도 별로 메리트는 없는데다, 배차나 정시운전 면에서도 워낙 약점이 늘어나는 사안이기 때문에 안한다는게 맞는 이야기라 할겁니다. 광명~서울~수색 전용선로가 생겨서 서울~금천구청 간의 과밀운행 문제를 푼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너무 어렵고 뒷탈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안건에 가깝기도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