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의 물산장려운동이나 산업화 시절의 국산품 장려 이야기가 아니라, 고속철도차량 이야기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걸 보면 이래저래 기괴하단 느낌이 있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EMU-260/320 컨셉은 봉바르디에 Zefiro 컨셉의 그야말로 짭 수준이고, 기술적으로도 근연성이 좀 의심이 됩니다. 트램의 경우는 솔직히 말해서 무가선 배터리 동력 방식 정도가 특이한거지, 요소기술은 20년도 더 전에 이미 다른나라에서 이것저것 완성해둔 걸 국산화 한 정도로 그러니 CRRC같은데가 들이댈 수 있는 그런 케이스기도 합니다. 국산화라고 하지만 외국입장에서 폄훼하려고 본다면 특허회피설계를 적용한 데드카피라고 해도 변명하기가 애매한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술개발을 스크래치 빌딩으로 바닥부터 하는 건 합리적인 방향도 아니고, 국산화를 압박하는건 철도 주요국가들이 명시적이건 아니건 다들 하는 짓이기는 합니다. 미국의 바이 아메리카 법 근거로 철도차량의 최종생산을 국내에서 하게 압박하는 점이라던가, TSI같은 제도로 사실상 EU규격의 적용을 강제하다시피 해서 외산의 진입장벽을 쌓는 유럽이라던가, 민간업체라는 이유로 공개입찰 자체를 회피하고 심지어 심하면 외산차량이나 부품을 소수만 사서 결국 유사품을 만드는 일본이라던가.
또 기술개발사업 자체가 의미없진 않고, 비록 이게 일종의 특허회피와 유사변종에 그치더라도 국내 공급라인을 유지하는데 기여한다면야 이게 편익이 없진 않습니다. 실제 외산 차량 사용이 강제되는 개도국의 경우 납기나 공급가격의 압박을 심하게 받거나, 사후관리에서도 계속 공급선이 코가 꿰여서 효율이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니 말입니다. 가격적인 부분만 보면 어떨지 몰라도, 납기관리나 사업효율, 선택지의 확보 같은 비계량적인 부분에서 효과가 분명 있기는 합니다.
다만, 이것도 어느정도라야 할겁니다. 차량공급자에게 충분한 이득을 주기 위해서, 안그래도 적자 쳐맞고 빌빌대는 운영사들이 운임을 더 끌어올리거나 부채를 더 쌓을 수도 없는 일이고, 또 그 막대한 비용으로 건설된 노선에 차량투입을 줄여가면서 수송력을 깎꺼나 선로의 활용도를 떨어뜨리는 것도 넌센스라 할거고, 또 국비의 형태로 기술개발해서 국내업체에 이전해 주는 경우 그 공여이익분은 고스란히 그 회사에 넘어가게 되는데 이건 또 괜찮은 것인가도 고민해 봐야할겁니다.
이게 반드시 0과 1로 딱 떨어지는 그런 계산이 아니라 굉장히 복합적이고 연계가 복잡한 그런 사안이긴 합니다마는, 그점에서 혈세드립을 쉽게 치는 행태는 좀 지양되어야 할거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