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 행주까지의 전차 부설은 꽤나 미묘한데가 있는데, 덕소도 그렇지만 행주 일대는 인구 밀집지도 아닌데다 위치로 보면 당시의 지리적 관념인 성저십리를 꽤 멀리 벗어난 그런 위치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리 보아도 시가지 내부의 교통을 위한 노면전차의 역할과는 꽤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약간 묘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게 실은 일본의 부설권 요구 땡깡을 피해가기 위한 고종 내각의 좀 튀는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하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은 경인철도 부설면허가 제임스 롤랜드 모스에게 부여되자 무슨무슨 협약에 따라 왜 우리에게 안줬냐 라는 주장으로 계속해서 왕실을 압박한 바가 있습니다. 이후 경부선 부설면허도 그렇게 받아내고는, 이후 호남선이나 경의선, 경원선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항의와 요구를 섞어서 땡깡을 부려댄 전력이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철도 사업권"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걸 당시 대한제국의 누군가가 착안했던게 아닌가... 라는 점입니다.
일본의 법제에서도 궤도사업은 철도와 별개로 보고, 그래서 철도성이 관설철도 영업권을 지키기 위해 사업인허가권을 틀어쥐고 혐성질을 하니 내무성 관할의 궤도사업 면허를 가지고 우회해서 도시간 철도를 부설하는 젓을 한 전례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당시 대한제국에서도, "전차 사업권"이라는 일종의 우회수단을 가지고 미국인 사업자들을 끌어들이는 수법을 개발했던 겁니다. 일단은 덕소선으로 경합 노선 자체가 있을 수 없는걸, 왕실의 필요로 하는 것인양 간을 본 다음, 당시로서 가장 첨예한 노선인 경의선의 1차구간이라 할 수 있는 행주까지의 사업권을 스리슬쩍 던져넣은 겁니다.
만약 저게 실현되었다면,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1호선과 경의중앙선이 결합된 형태의, 시내구간에서 노면공용을 하지만 교외구간에서는 사실상 전용궤도에 가까운 설비를 달리는, 19세기 마지막 10년 사이에 미국에서나 슬슬 생겨나기 시작하던 인터어반 노선이, 대한제국에 생겨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당시 조선은 막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전등과 전차 사업을 겨우 시작한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저런 근교전철까지 손을 뻗었다는 건 그야말로 신문물에 보수적이었네 어쩌네 하는 통념과 만 광년쯤 떨어진 그런 느낌이 든달까. 보나마나 이후 개성까지 사업 연장이 불가능하진 않았을거고, 수 년쯤 뒤에 부산에서 일본인 사업자들이 온천장 노선에서 그랬듯이, 행주에서 개성까지는 증기운전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전환했다면 전력 인프라 문제를 피해서 사실상의 궤도선 간선이 하나 생겨나는 그런 그림이 가능했을겁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서북철도국 주도로 하던 서대문-개성구간의 철도부설, 일시 미터궤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여하간 없는 재원을 가지고 직영사업을 하려던 것도 러일전쟁을 빌미로 강탈당했던 그런 전개가 되어버리기는 합니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던 무기력하던 구한말의 분위기와 러일전쟁 전후의 10년 사이의 분위기는 의외로 전혀 달라서, 당시 대한제국이 그냥 손놓고 있기 보다는 나름의 노력을 사방팔방으로 하고 있었기는 하는게 보이는데, 저것도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만, "묘한 이야기" 부터는 ***만우절*** 뇌피셜이라는 점을 빼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