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운전 기준을 UIC기준 15분 59초 이상 늦지 않은 열차로 정의하는 것은 그게 말 그대로 평가와 벤치마크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UIC는 대개 유럽의 각국 철도를 주축으로 해서 확장된 국제협회인데, 거기서 국가간 비교를 위한 데이터로서 만드는 자료에서 정시 운전을 그렇게 정의했고, 그게 가장 유력하고 비교가능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편의적으로 한국만 조작적 정의로 10분 이하까지 닞추면 또 그만큼 숫자는 변화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데이터 관리를 2중으로 해야 하는 부담이야 그냥 사무관리자 몇 명이 독박쓰면 끝나는 사소한 일이겠습니다마는. 그게 누군가의 정시ㄸ...아니 편집증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 정도의 의미라면 좀... 웃프지 않을까 생각은 듭니다.
그럼 왜 하필 15분 이상을 지연운전으로 정의했는가... 그건 뭐 기준 만들때의 논의를 알 길이 없으니 깊게 알 수는 없긴 합니다마는, 열차의 운행 과정에서 생길수 있는 오만 해프닝, 트러블, 고장, 장애 등등을 감안했을 때 이정도 까지는 정시운전으로 용인할 수 있는 범위다 라고 본게 거기라 봐야할겁니다. 자동차의 운전을 직접 해봤다면 각각의 정차지점을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서 다니는 것의 난감함이 어느정도인지 대충 이해는 할거라 보는데, 철도도 비슷하게 정말 벼라별 이유로 정시 유지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차량에서 고장은 아니라도 어떤이유에서인지 출력이 안나온다거나 브레이크가 밀린다거나 할 수 있고, 지각한 사람이 닫히는 문에 뛰어들면서 문을 한번 더 여닫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또는 아픈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후송하느라, 또 계획보다 빨리 또는 늦게 가는 앞차나 교차하는 열차 때문에, 어제 내린 비나 오늘 낮의 더위가 너무 심해서, 열차가 많이 밟고 지나가다 보니 자갈도상에 공극이 늘어서 선로가 휘거나 살짝 내려앉아 서행하느라, 신호기의 전구가 죽었거나 릴레이가 튀어 엉뚱한 신호가 현시되어 현장확인을 하느라, 건널목을 지나는 자동차가 운전이 서툴러서 또는 도로가 막혀서 제때 못빠져나가서, 비나 눈, 이슬, 서리, 낙엽으로 선로가 미끌거려서, 기관사가 몇일 전에 발령받은 사람이라 솜씨가 서툴러서 등등 정말 다양한 이유로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정도 완충가능한 공차를 기준에 두는건 상식적이라 할거고, 아마도 증기차와 구비구비 돌아다니는 선로가 기본이던 시절에는 저정도면 거의 정시라고 보는 걸로 컨센서스가 있어 잡았을 겁니다.
그러면 이제는 고속선 위에 고밀도로 차를 다니게 하고, 차량의 성능도 그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올라갔으니 이건 따로 기준을 잡아야 하는거 아니냐 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나라가 고속열차와 전기철도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또 과거자료나 국가간 비교 기준으로 쓰기 위한 자료를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만드는 것도 그리 좋은 방향은 아닐겁니다. 더욱이 지금 저 신문에서 두들기는 것과 같이, 숫자와 통계는 멀쩡한 것도 이상하게 비틀 수 있는, 디즈레일리 수상이 그래서 빌어먹을 거짓말과 등치했을 정도지만, 그런 마력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불명예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 기준을 그정도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게 맞을겁니다.
사실 이 기준으로 데이터를 공표하지 않는 고속철도 운영 국가가 하나 있습니다. 일본이라고. 신간선 시스템은 운영체계가 특수한데다, 고밀도 운전을 하기 때문에 정시 기준으로 데이터를 공표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면서 통계 산출 자체를 안하고 있고, 그게 50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중입니다. 대신 던지는 자료가 평균지연시분이라는 자체 지표입니다. 즉, 총 누적지연시분을 총 열차운행횟수로 나누어 내는 숫자인데, 월 내지 연간 자료로 내면서 보통 1분 이하라고 자랑하는데 쓰는 숫자입니다. 1970년대 노사분규나 시설 하자 빈발로 반일 운휴가 잇따르던 시절에는 이게 10분 언저리까지 늘어나기도 했었지만, 안정화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정도 숫자로 억제가 되고 있기는 합니다.
사실 저런 주장이 다발하면 나오는 현실의 대책은 관리기준의 엄격화 같은 방향도 나오겠지만, 실제로는 열차 시각을 줄줄 늘리고 운전속도를 낮추는 그런 방향으로 보통 흐르게 됩니다. 빡빡하게 달려서 2시간 25분을 맞추는 다이야 체제보다는, 그냥 2시간 40분쯤 정도를 기준으로 역에서 정차시간도 넉넉하게 부여하고, 운행중에 트러블이 좀 생기더라도 그만큼 여유를 부릴 수 있게 짠다면 만사가 모두 행복해 질겁니다. 뭐, 겸사겸사 체크인도 간선철도는 항공 수준으로 빡빡하게 운영해서, 발차 15분전에 파이널콜을 방송으로 던진 다음, 10분전에 개표를 마치고 5분 전에 차의 출입문을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승차거절을 하고 폐문대기 후 정시발차를 하는 조건으로 운행을 하면 정시율을 5분 기준으로 잡아도 지금과 비슷하게 나올 수 있을겁니다. 운전시간이 줄줄 늘어지건, 선로용량이 시궁창이 되건, 1일 운행열차 숫자가 현재의 반토막이 되건 알 바 아니고, 지표만 깔끔하게 유지하려면 이런 방법이 있을겁니다.
여기에다 일본철도의 성명절기, 운행 중 자연재해나 중대장애 발생시에는 열차의 전면 운휴와 운행중 열차의 타절을 단행하고 대체수송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가면 지연열차를 극단적으로 줄이는게 가능해질겁니다. 목적지에 가지 못하게 된, 또는 엄청나게 늦게 대체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는 고객의 사정따위 알게 뭡니까. 전 열차가 정시 수준에서 전부 취소, 결항되어버리면 지연열차는 깨끗하게 없어지게 되니, 통계지표가 한결 깨끗해 지니 "고객만족도"가 올라가게 되는데 이러면 거시적으로 보는 분들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겁니다. 당일 결행이 아닌 계획운휴를 잡는다면 결행율 지표에도 영향이 안가니 그야말로 "클린"한 성적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 말입니다.
지연운행이란게 없으면 좋을거고, 그걸 빼고 보더라도 분 단위의 지연까지 통제가 가능하면 보기엔 좋을 지도 모릅니다. 사실 한계까지 시설과 차량, 인력을 우려먹기 위해서 어떤 의미에서 빡빡하게 굴리기 때문에 생기는게 현대적인 철도 시스템의 지연운행이라 할거고 말입니다. 하지만, 정시운전이 절대적인 선도 아닐 뿐더러, 그 정의도 어느정도는 조작적일 수 밖에 없고, 또 그걸 위해서 또 다른 비효율과 변칙이 생겨나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한 정시운전인가를 의문하게 될겁니다. 사실, UIC통계가 느슨한 이유도 이런 편집증적인 정시운전 요구가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각국 철도의 요인들이 그렇게 정했을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