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나왔는데, 2호선 지하보도와 본선 사이에 애매하게 쓰이지 않는 비밀의 공간이 있다는 기사입니다. 무슨 용도인지 시 당국도 모르는 것으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처음 봤을땐 위치상 지하공동구로 계획했다가 사용할 가망이 없어서 버려둔게 아닌가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공동구 설비라고 보기에는 좀 너무 "과잉"에 가까운 면이 있고, 초기 지하철 계획에서 다뤄지는 공동구의 규모는 그리 큰 수준이 아닌데다, 대개 철도 구조물의 하부 또는 측부에 붙는 형태다 보니 이것도 좀 애매하단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유신시절의 엄혹한 사회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다음으로 추정해 볼 만한건 보안시설, 예를 들면 보안관계자 전용의 차량통로라던가, 방공호 시설물로 계획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당시엔 불시에 개전이 날 가능성이 상존했고, 과하게 가면 중국이나 소련의 핵투발 가능성부터 시작해서,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이나 프로그 로켓같은 장거리 로켓 위협이 현실화되던 시절이라서, 방공호로 쓸 만한 지하시설을 확보하는데 꽤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안목적의 통로구조물로 지었다기에는 딱히 용도가 있을만한 루트는 아닌거 같고, 방공호로 계획했을 가능성은 없진 않지만 연결통로 구조를 어떻게 빼낼지도 모르는데다, 그런 시설을 길쭉하게 뺄 이유가 있나 싶은 그런 느낌도 있는지라 애매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 외에 환승통로 목적으로 지었다고 보기엔 다른 노선과 접속하는 구조가 아닌지라 이게 필요한가 싶은 그런 방향이고, 방수로 같은 목적으로 쓰는건 이게 시설의 가장 하부가 아닌 중간층이라서 운행선을 조지기 딱 좋은 방향에, 이 용도라면, 하다못대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라도 최종적으로 수류를 배출하는 루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것도 예측이 안되는지라 이것도 아니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실마리가 있는가 싶어 건설지 자료를 찾아보니 이 시설물에 대한 실마리가 하나 언급되는게 있었습니다. 내용을 갈무리해 오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거기서 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2호선 을지로 구간의 지하보도 및 상가 구조물이 길게 이어져 있는게 실은 주차장으로 쓸 계획으로 계획했다가 이래저래 취소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에서 지하상가 및 보도 구조물이 위에 있는데 어떻게 접근로를 만들 것인가 라는 부분에서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램프를 만들기엔 공간 문제가 상당히 심각할 수 밖에 없을게 뻔하고, 공사비도 엄청나게 들어갈게 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당시엔 현역으로 쓰이던 오사카의 아지카와 터널(참고 링크) 같은 엘리베이터를 통한 출입방식을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대로는 좀 어렵다면 2대를 병렬로 설치한다거나 하는 방법도 고려를 할 수 있었을거고, 아니라면 인근 대형건물의 지하공간을 활용해서 접속시키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었을겁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일정구간은 반드시 주차면을 두지 않아도 되는 여건이 되었을거고, 또 지하구조물 특성상 상부에 계획고가차도가 있거나, 지하상가같은 지하시설물이 기 조성되어 있는 구간이 있다거나 한 부분은 기둥이 설치되어 구조 보강을 하는 그런 형태가 되었을거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야심찬 설계는 주차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위배되는 부분들이 많았다고 건설지에 직접 언급되기도 한지라, 결국 건설지에 언급되는 대로 상당히 무리한 설계에 가까워서 사용하지 않는 걸로 결론이 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글을 적다가 생각난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지하철 2호선은 1호선과 시청에서 교차를 하는 동시에, 경의선 복선 아래 약 7.2미터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고, 마침 아현동의 구릉지를 넘는 등 상대적으로 심도의 제약이 꽤 붙어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기존의 조성되어 있던 을지로나 시청 일대의 지하상가와 어느정도 기면을 맞추어서 보행통로나 상가공간을 조성해야 했다면, 지하철의 운행선로 사이에는 애매한 높이의 공간이 남겨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문제는 이 공간이 기껏해야 5~6m정도의 공간에 불과한지라, 여기를 되메움 하고 그 위에 다시 별도의 터널박스 구조물을 올리는건 공사의 효율이나 비용 면에서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구조물의 안정성 면에서도 그리 좋은 대안은 아닙니다. 그래서 애초에 구조물을 3층 박스, 정확히는 공동구 및 집수정 시설물까지 3~4층 박스 구조물을 넣은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하면서 이 애매하게 남는 공간이 아까우니, 역으로 저 주차장으로 활용해보자는 구상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라는게 제 추론입니다. 물론,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출입이 굉장히 번거로운데다, 시설도 지나치게 협소하고, 또 환기나 화재 대응 문제가 같이 따라올 수 밖에 없는 공간일 수 밖에 없는지라, 비록 규제가 굉장히 허술한 7, 80년대의 기준으로도 좀 무리한 구상이 되어버린 듯 해서 접혀버린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P.S.: 지하철2호선 건설지를 좀 보다보니... 지하철 통행방향 결정 이유에 관련한 "라플라스의 궤"가 있는데...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