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좀 도발적인 발표를 던졌으니, 철덕질에 발을 걸친 자로서는 읽씹할 수 없어 좀 논평을 해 두고자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걸 정치와 국회주변 짬밥을 먹었던 사람이 내놓은 안건이라는데서 철도산업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이거밖에 안되나 라는 점이 상당히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화두로서 이 부분은 한번 정도는 이야기해볼만한 영역이라 생각이 들긴 합니다.
사실 언제나 항공쪽의 떡밥을 가져다 철도 너이새끼들은 왜 이걸 못하냐 하는건 한 90년대 민영화론자 이래의 굉장히 오래된 레파토리기는 합니다. 솔직히 날다가 서면 좆되는 항공기의 안전 개념 수준이나, 이번에 세계 선단급의 처리량을 자랑한다는 하네다 공항에서 지상측에서 이상행동을 통제할만한 보안장치가 허섭하기 그지 없었던 점을 보면 솔직히 항공에서 철도에 훈수를 두는게 좀 오까시이 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거 같긴 합니다마는, 뭐 비싼 교통수단이다 보니 뭔가 신박한 개념이나 이런건 잘 창안을 하고 어느정도는 좀 음미해볼만한 껀은 있기는 합니다. 개중에서 LCC같은 비즈니스 모델 부분은 유럽 등지에서는 꽤나 널리 퍼져있고, 이걸 선진경영™으로 물빨핥하는 분들이 경영이나 교통바닥에 꽤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그게 좀 Myth같은 데가 있지만 말이지만 시원하게 그걸 반박하기는 또 껄쩍지근 한 데가 많달까 그렇기도 하고.
일단, 저가항공 비즈니스의 핵심부터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요즘은 개까이다 못해 가루가 되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이지만, 여기가 꽤 선구적이고 이쪽 모델들을 기반으로 많이들 어레인지를 해서 접근하는게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모델의 핵심은 세 개 입니다. 하나는 백오피스 영역, 즉 정비나 승무, 기재운용 같은 부분에서 최대한 빡세게 굴려먹어서 저비용을 뽑아내는 것이 하나고, 둘은 변두리 공항이나 애매한 시간대 등 인프라의 빈 틈, 흔히 정책적 장려 같은 것들을 싸게 따먹고 여타 상관례상 제공하는 보장이나 서비스는 최대한 회피하는 체리피킹을 잘 해먹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은 뭔가 기존의 상관례 같은것들을 갈아엎고 고객을 최대한 “후려내는” 운임과 요금 시스템, 이른바 타리프 정글을 만들어놓는 것이라 할겁니다.
철도에서 이 셋은 일견 가능해 보이는 물건들이기는 합니다. 실제로 SR이 좀 그렇게 해보려고 각을 잡았던 흔적들이 종종 있는데, 승무운용이나 기재운용에서 예비를 최대한 줄이고, 인력운용도 철도공사보다 좀 더 빡세게 해볼라고 했으며, 차량도 737도배질 비슷하게 이른바 “호남산천”이라 불리는 410석 KTX-산천 모델로 전부 채워넣어, 20량 편성 운용 없이 중련을 치거나 아예 단편성으로 굴리는 심플화를 꾀한 것이 1의 사례라 할것입니다. 뭐, 체리피킹도 철도공사에 정비, 유지보수, 공동역 영업 위탁 같은걸 죄다 떠넘겨 놓고 그랬으니 잘 뽑아먹은 경우라 할거고 말입니다. 이것만 보면 좀 더 쪼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면 철도도 되잖아?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철도산업에서는 2와 3에서 길이 막히게 되어 있습니다. 일단 인프라에 빈 틈이 없습니다. 과거의 개뻘짓들을 어마무시한 대토목사업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는 평택~오송 구간의 병목 문제가 대표적이라 할겁니다. 여기는 저번 SR통합 이슈 논쟁때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하루 210~220회 정도의 열차가 꾸준하게 통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임시편 증강조차 안시키는 그런 구간이 되어 있습니다. 이 와중에 LCC 열차에 선로용량을 할당해 달라고 하면 아 네 그러시군요 드, 드리겠습니다 할 리가 없을겁니다. 이 희소자원을 배분하는 문제를 두고 전관빽을 땡겨다 쓰고, 공공철도가 그러면 안되니 어쩌니 하는 언플을 또 질러대며, 또 적당히 관련 이해관계자 집단을 구슬러서 집단민원을 관계각처에 꼽아넣는 짓을 하면서 진흙탕싸움을 해야 받을까 말까 할거고, 아마 선거 한번 끝날때 마다 미실현공약과 부패범죄 기소 안건을 만들어대는 시궁창이 될겁니다.
뭐, 현재도 이 문제는 좀 현재진행형 비슷한데, 좀 다이야가 이쁘게 나오는 출발시각을 뽑아내려고, 또 어떻게든 먼저 주요역의 고객을 선점하려고 후속열차가 정거장 밖 정차로 다이야가 개털리든 말든 정차역을 선점하려 들어서, 주말만 되면 상습적인 지연 열차가 몇개씩 나오는 그런 흐름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어느 열차인지는 아마 좀 탐문해 보면 바로 나올만한 그런건데, 이걸 몇 년씩 개정도 안하고 당국들이 뒷짐지고 특정 회사 열차를 밀어준다거나 하는게 지금의 분위기랄까.
사실 우리나라와 유럽의 환경이 가장 다른게 이건데, 유럽에서는 선로 용량 문제가 한국만큼 첨예한 수준인데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적어도 도심구간에는 2~3복선 정도는 들어가고, 객화분리 작업이든 근거리, 장거리 분리 작업이든 용도별 선로 건설이 잘 되어 있으며, 대도시에는 복수의 터미널역이 있거나, 아니면 주된 중앙역과 보조 착발역들이 적당히 배분되어 있어서 용량 압박이 있다 해도 대체가능한 루트 내지 착발역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가 안되면 그럼 3의 길이라도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냐, 타리프 정글 전략을 좀 해볼 수 있는거 아니냐 이야기를 할 수 있을겁니다. 타리프 정글이라는 단어가 좀 생소하겠지만, 고전적인 정가 정책은 접어둔 다음, 전통적인 보통 운임, 즉 취소환불의 제약이 없고 여행개시 시점의 제한이 없다시피 한 일반승차권은 좀 안보이게 잘 숨기고, 그나마도 비싼 요금대를 설정해 두는 대신에, 미끼성으로 한참 전에 특정시점의 열차 좌석을 미리 선결제하면 싸게 해주거나, 비인기시간대, 또는 회송에 가까운 이동, 변두리 착발이나 저속구간이 끼는 노선이면 파격가로 던지는 식으로 가격을 잡아가는 겁니다. 이건 좀 극동지역의 문화에서는 굉장히 “친피라 양아치”같은 짓거리의 인상이 강하다는 점은 있지만 뭐 나만 아니면돼 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지면 뭐 공정한 상거래 관행따위야 알게뭐냐 아니겠습니까. 이게 독일이나 영국에서 늘 민영화 개객끼 논리에 늘 들어가는 이야기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전략이 일단 곤란하기 그지 없는데, 일단 기본적인 운임수준, 그러니까 보통 운임이라 할 수 있는 일반승차권 운임이 일단 처절할 만큼 낮습니다. 이게 기재부나 국토부의 양념질 덕에 상업적인 운임결정이 내려진게 아니라, 국가 수준에서 “합리적”인 기준의 적정운임으로 결정이 내려진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좀 오래된 자료기는 하지만 2016년에 자작으로 만든 표가 하나 있으니 이걸 좀 보고 오면 이 부분이 이해가 될겁니다 (링크). 그때 기준으로, KTX 서울부산 운임을 100이라 하면, 독일은 275쯤, 프랑스는 가변폭이 많이 커서 60부터 220까지 가변하지만 일단 대충 평균선은 138 정도, 영국은 500이상, 이탈리아는 국철(FS)는 217, 민간인 이탈로는 192 정도가 나옵니다. 즉, 우리나라는 애초에 “낮은 운임을 공평하게 넓게” 발라놓는 그런 운임체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가변적인 운임이고 뭐고가 안되는 그런 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지 자체가 없다시피 한지라.
그리고, 한국의 상관습 자체가 철도승차권은 사인간의 계약관계, 즉 민법의 영역으로 보는게 아니라 행정의 영역으로 보는 성향이 매우 큽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지연배상 정책을 적용해서 무임수송이 아닌 이상에는 어쨌던 할인권이든 배상금이든 펑펑 뿌리는 것도 대단한 소비자보호 정책이지만, 아마 할인승차권에 할증수수료규약이나 취소변경 유보 조항을 전혀 적용하지 않는 것도 아마 세계에서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경우 보통 저가항공이라면 보딩패스 값을 그냥 날린다 생각하는게 빠른 경우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위탁소화물비를 후리면서 기내 휴대 소화물 중량제한을 엄격히 적용해서 후리거나, 살짝 좋은 좌석에 추가요금을 받는다거나, 기내식음료나 여타 서비스에 요금을 후려버린다거나 하는 전략까지 들어가면 철도는 감히 흉내도 못내는 그런 영역쯤 될겁니다.
아니, 애초부터 그런식의 LCC의 “약탈적 요금” 전략을 꺼내들었다가는 천하의 철도공사가 국민을 상대로 장사질을 하냐고 국회부터 언론까지 집중포화를 퍼부어, 대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후에 감사원 나으리들 부터 시작해서 국민권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보호원 등이 엄근진한 표정으로 욕하고 모욕하고 욕되게 욕보게 갖은 비난과 조리돌림을 퍼부어대고, 그러니 이러이러하게 국민눈높이에 맞추기 바랍니다 라고 처분을 던질거고 말입니다. 좀 국평오 드립같은 이야기지만, 지금의 각 약관이 그렇게 수많은 고나리질로 단근질 당한 그런 결과물이랄까.
프랑스의 위고(Ouigo)를 우수사례로 들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프랑스의 위고는 SNCF의 서브브랜드로 사실 승차권 유통채널을 분리운영하면서 마켓 세그멘테이션을 짜른 그런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표준적인 고속열차 서비스를 앵위(Inoui)라고 재명명한 것도 그런 배경에 가깝달까. 운영방식도 승차권은 역이나 여행사를 배제하고 전용 앱 창구로만 판매한다거나, 용량여유가 상당한 LGV 인터커넥션 이스트 구간 역에서 착발하거나, 파리의 보조터미널격인 역에서 착발하는 식으로 어느정도 “핸디캡”을 붙이는 방식으로 굴려먹고 있고 말입니다. 뭐, 일단 2, 3이 되는 여건이니 이런 비즈니스를 하는 거라 할겁니다. 이게 보기에는 좋지만, 그걸 위해서 19세기부터 쌓아올린 도시의 철도 인프라들이나, 재정적으로나 시설적으로나 한국과는 운니의 차가 있다 할만큼 여유만만한 운영환경, 또 국제선 영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지정학적 배경 같은게 겹치니 가능한 사치에 가깝다 할겁니다.
아니, 사실 타리프 정글 전략같은걸 써서 치열하게 소비자를 후려내는 것을 장려하는 방향은, 우리가 가진 고유의 장점, 즉 전반적으로 낮은 운임을 공평하게 적용하는 “고평등 저부담”의 철도를 파괴하려는 건 좀 앞뒤가 뒤집힌 그런 방향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사실 저운임정책이 철도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수준까지 오고 있는게 현실이고 이걸 개선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그걸 타파하는 방법이 소비자 니즈라고 이름붙여진 정보격차 내지는 여가격차를 악용하여 “소비자를 후리는” 방향이라면 그건 잘못된 방향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