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항의 존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왜 이 조항이 생겼는지를 약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조항은 2000년대 초반에 검토, 진행되던 철도구조개혁의 와중에 생겨난 일종의 단서로서 생겨난 조항입니다. 당시에 철도구조개혁은 한국철도주식회사라는 사실상의 주식회사화를 전제로, 시설부문은 철도시설공단이라는 공공조직이 관리하는 공공보유로 놔두되, 운영은 장래 지분매각을 통해 민영화를 하려는 포석 하에 저런 조직구조가 짜여집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파업을 거치고, 마침 대선 이후의 정치 지형의 변화가 생기면서 주식회사 방안은 중지, 2003년의 방침으로 공공조직인 한국철도공사가 운영을 담당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파업까지 진행되었던 배경에는 주식회사화를 추진하면서 당시의 유행에 가깝던 현업부분의 자회사화 내지는 외주화가 거의 기정사실처럼 다루어지던지라 당장에 블랙기업 그 자체였던 철도청의 상황에서 심지어 고용안정성까지 깨지는 상황이 가시화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철도청은 자회사를 우후죽순 수준으로 마구 만들어내기까지 했는데, 공사화 이후에는 자회사 설립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속사정이 있었지만, 당시 독일철도나 영국철도가 무수한 소단위 회사로 업무를 쪼개는 걸 보면서 각 사업부문 자회사를 다수 만들고 현업 직원들 다수를 여기로 내보내 사실상 직고용을 정리하려던 계획이 있었던 걸로 생각이 됩니다. 물론 화끈한 노사분규를 겪고나서는 직원을 스핀 오프하는건 포기하고, 해당 자회사들이 인원을 자체 충당해서 업무위탁을 받아가는 형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중에서 특히 민감했던건 가장 험하고 거칠며, 중노동이라 할 수 있던 시설 분야였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상당히 기계화가 진행되고 야간집중보수 방식이 확산되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엔 벌건 대낮에 열차가 다니는 사이로 사람이 침목을 갈고 자갈을 다지는게 당연시되고, 매년 몇 명씩은 죽어나가는게 보통이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만, 가장 3D에 가깝기 때문에 기피업무였고, 더욱이 비용을 잔뜩 쓰면서도 실제 업무의 성과는 잘 안보이는 그런 업무였기에 외주화에 가장 노출이 되었던 그런 면이 있습니다. 이외에 전기나 신호 역시 그런 3D에 가까운 구석이 많았고, 실제 성과가 안보이는 그런 업무이기도 합니다.
이 와중에 영국에서는 민영화 단행 후 5년 정도가 지나면서 문제가 터지는데,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던게 시설부문의 부실화였습니다. 레일트랙이라는 민간회사가 시설보유와 유지보수를 전담하도록 제도가 짜여졌고, 유지보수의 효율화를 이유로 실제 현업부문은 수많은 소단위 회사로 쪼개 민간위탁 형태로 전환이 되었는데… 이게 실제로는 제대로 유지보수를 하지 않는 그런 모양새가 되어버립니다. 당시 통계자료를 보면 유지보수비용으로 나가는 금액이 극적으로 줄어드는데, 실은 그게 돈을 빼먹는 거였고 실제 시설의 안전성을 담보하는데 들어가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그결과 레일 파손으로 탈선사고가 나서 다수의 희생자를 내는 대형사고가 났고, 이게 이슈가 되어 유지보수를 부랴부랴 강화하다 보니 수많은 서행과 제한이 깔려 열차운행이 파탄지경이 되어 5시간 지연이 일상이 되는 웃기지도 않는 개판이 벌어졌었습니다.
이 꼬라지가 나더라는 이야기가 확산되고, 또 민영화 반대와 결부된 고용안정 문제까지 파업으로 돌출되면서 철도공사가 성립하게 되고, 여기에 단서로서 시설 유지보수를 철도공사의 소관업무로 부칙까지 붙여놓게 되었던 겁니다. 이 부칙의 목적은 전면적인 외부위탁을 하거나 시설공단으로 넘김으로서 시설부문에서 완전히 손을 놓는 걸 막고자 하는 이중의 안전장치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여기서 왜 시설공단으로 넘기는 걸 반대했는가...라는 점인데, 현실적으로 고용규모가 엄청나게 큰 시설 관련 인원을 일거에 넘겨받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이 큰 과정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시설공단은 사무조직으로 인식이 되어 있어서 조만간에 정리가 될 거라 본 것도 있었을겁니다. 또 시설공단이 되기 전의 고속철도건설공단은 고속철도 완공시 까지의 한시조직이 될 가능성도 있었기에, 일본의 분할 민영화 과정에서 생겨난 청산사업단 처럼 실질적으로 몇년 더 유지하다 해산 내지는 고용정리로 가닥이 잡힐 위험성이 보이기도 했었고. 물론 이건 지금 보면 아주 과도한 걱정이긴 했을겁니다마는.
여기에 열차운행 사이사이에 작업을 하는게 보통이고, 지금도 그렇지만 뭔가 장애가 생기면 일단 일선의 시설이나 전기 직원들이 우르르 나가는게 당연시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열차운행과 시설의 유지보수를 분리한다는 건 이래저래 무리가 많다는 것도 한 이유기도 했습니다. 열차를 잡고 긴급보수를 하건, 아니면 열차가 다니는 사이에 작업을 통제하면서 보수를 하건 일단은 운영부문과의 협조관계가 특히 민감할 수 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사고가 나는데, 만약 별개의 기관이나 외부업체에서 한다면 상호 협조가 되기도 어렵거니와, 누가 뭘 했어야 하네 아니네, 누가 갑질을 하네 마네를 두고 쟁의가 발생하기도 좋은 구조가 될 수 밖에 없으니 일단은 한쪽으로 몰아놓은 거에 가깝다 할겁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 안전조항 하나가 박혀서, 역으로 철도공사가 열차운행을 통제하지 않는 진접선이나 그나마 관제업무는 보기는 하는 수도권고속선 구간에서도 철도공사 직원들이 유지보수를 수행해야 하는 좀 묘한 체제가 되고 있기는 합니다. 입법의 취지는 고용보호와 안전확보인데, 이중 안전확보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조항이 되어버렸달까. 이점에서는 개정의 필요성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간에도 현장 조사나 점검이 이루어지고, 야간작업을 위한 설영이나 공기구류의 준비, 또 필요하다면 긴급출동을 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건 흔하고, 특히나 이번 폭우때 보다시피 뭔가 문제가 생기면 이들 인원들이 만사 제쳐두고 현장확보를 해서 열차를 어떻게든 다니게 만드는게 늘상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걸 외부기관이 한다면 일단 관할 문제나 누가 원인자가 되어 비용과 책임을 부담할지부터 교섭을 해야할거고, 좋게 넘어간다 해도 응급조치 이후의 보수작업은 매년도의 예산배정과 사업계약의 통제를 받게 되어서 유지보수 작업이 일종의 희소자원 처럼 다뤄지게 될 가망이 높아질겁니다. 또, 근래 일본에서 문제가 되었던, 보수작업의 부실처리, 계측값이나 보수작업량의 개서, 위조같은 불성실한 업무 문제는 더더욱 커질 수 밖에 없고 말입니다.
이럴바에는 차라리 현재의 부칙으로 단서가 붙어있는 형태가 아니라, 실제 각 기관의 업무배분 조항에 정식으로 유지보수 업무를 운영자의 소관 책임사항으로 명시를 해 두되 이를 국가나 지자체가 보조할 수 있다는 형태로 정리를 하는 방향이 맞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상하분리라는 단어에 매몰되어서 시설과 차량과 운전, 영업으로 명확히 떨어져야 한다는 관념에 얽매일 필요는 없고, 시설의 건설과 개량, 폐지, 소유와 거기에 따른 비용부담을 하부 부문으로 다루면 족하다고 봅니다.
뭐 애초에 이 문제가 불거진게 사소한 현상 불일치를 빌미로 국토부가 밀고 있는 유지보수와 관제의 분리를 위한 밑작업일거 같아서 아마 이런 방향은 어떻게든 뭉개려 들거라 보이기는 합니다. 야당의원을 발의자로 포섭한거야 여당이 밀면 모양새가 아주 안좋아지니, 떡밥 하나 끼워서 구워삶아 들이밀었을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