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지역에서 편의적으로 'xx중앙'이라는 역명을 붙이지만, 사실 독일 등지의 hauptbahnhof, 흔히 중앙역이라고 번역하는 이 단어의 함의는 단순히 지역의 중앙이라는 의미로 쓰는 말이 아닙니다. 의외로 함의를 포함한 용어랄까.
우리나라는 구한말에 일제의 주도하에 철도건설이 시작되다 보니 이런 부분의 체감이 덜하지만, 유럽의 경우는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초기의 철도부설을 국가 외의 주체가 주도하였습니다. 특히 영국의 경우는 19세기 내내 민간자본에 의해 건설이 이루어졌고, 독일은 통일 이전부터 개별의 소국들이 자기의 편의대로 건설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프랑스는 그나마 국가주도라고 하지만, 반관반민적 건설이 이루어지던 상황이다 보니 국가주도성이 들어가긴 했어도 좀 편의적 건설이 곳곳에 있었고.
이런 중구난방적인 건설이 이루어지다보니 대도시에 이르러서는 저마다의 터미널이 난립하는 모양새가 되기에 이릅니다. 즉, 각 노선별로 역이 이곳저곳에 자리하는 상태로 건설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 결과 도시는 도시대로 매연과 난립한 철도망으로 인해 도시기능이 나빠지고, 토지를 점유당하는 문제가 생기고, 철도 또한 환승이나 연계이용이 난해해지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즉, 철도의 강점, 네트워킹과 집적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철도들은 합병과 역의 통합을 통해 효율화와 체계화를 힘쓰게 되는데, 이점에서 특히 앞서간건 프로이센 주도로 통일을 달성한 독일연방이었습니다. 뭐 아무래도 소국들이 난립해 건설하던 철도망이 영국만큼 방대하지 못한 덕도 있고 해서 그런 듯도 하지만, 일단 철도망 정비에 국가적인 관심을 들이면서 추진하였고, 이중에서 각 도시의 역이 난립하는 걸 정리해서 하나의 커다란 역에 집약시키는 정비를 적극적으로 하게 됩니다. 즉, 중앙역이라고 흔히 하지만 정확히 의미를 풀자면 "통합역"이라고 하는게 맞달까.
이런 통합역으로의 정비는 독일이 앞서가는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이건 철도나 지리적인 부분도 좀 작용하기는 합니다. 영국의 경우 런던 자체가 유럽에서 손꼽히는 거대도시인데다 워낙 사철이 난립하다 보니 하나로 몰아놓는게 좀 무리기도 했고, 프랑스 또한 파리가 사실상의 철도망의 심장 같은 위치였기 때문에, 모조리 한 역에 몰아치는 건 좀 어려운지라 방면별 터미널을 정비하는 모양으로 했습니다. 또 당대의 건축기술 사정상 지금의 베를린 중앙역처럼 다층 구조의 대규모 역을 만드는건 상당히 어려웠고, 항속거리가 짧은 증기기관차에 의존하는 사정상 장거리를 한번에 달리는 열차보다는 중간중간 기착이 필수적인지라 차라리 두단식과 같은 평면구조가 유리했달까 그런 것도 있습니다. 또 역 건물의 정면을 크게 보여 위엄을 세우려는 그런 감각도 작용했지 싶고.
미국의 경우도 이런 종합역 개념이 있는데, 바로 유니언 스테이션이 해당합니다. 미국은 철저하게 민간투자를 전제로 하되, 노선별 독점권을 인정하는 식의 철도정비 정책을 유지하는데, 역시 도시에 역이 난립하는 상황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보니, 합자 내지는 별도의 회사가 각 방면의 열차를 받아들이는 역을 세우는 방향으로 정비가 진행됩니다. 뉴욕의 상징이라 할만한 그랜드 센트럴 역이 이런 식의 정비를 대표한달까. 물론 시카고 등지에도 유니언 역이 따로 있어서 여러 노선이 한 역에 기착하는 식으로 정비가 됩니다.
이런 중앙역 정비의 개념은 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찌감치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정비사례가 바로 서울역인데, 원래 서울의 터미널은 용산, 남대문, 서대문으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용산은 경의선 및 경원선의 거점역으로(물론 열차 자체는 남대문까지 갔던 모양이지만), 남대문은 경부선의 거점으로, 서대문은 경인선의 거점으로 하는 식으로 한 노선상에 있으면서도 각기 터미널을 따로 쓰는 구조로 운영이 되어 왔는데, 이를 도시를 가로지르는 직결선(신촌~서울 간)의 건립과 서대문역과 남대문역을 폐지하고 남대문 역 인근에 통합 서울역을 설립하는 식으로 정비를 한 바 있습니다. 즉, 서울역에 경의, 경부, 경인, 경원의 각 방면을 집약시키고자 했달까.
이런 중앙역 정비는 해방전엔 서울역 정도였지만, 해방 후 60년대를 거치면서 지역 거점역들에 대해서도 제법 이루어집니다. 가장 대표적인 정비사례가 동대구와 마산을 들 수 있습니다. 마산의 경우는 구마산, 신마산, 북마산 등으로 난립한 구조에 심지어 시가지의 협소한 철길을 헤집고 가서 스위치백 운행을 하던 판이다 보니 이걸 지금의 마산역으로 통합했었던 전례가 있고, 동대구의 경우는 대구역이 협소한 바 대구선이나 경전선 직결열차의 처리가 불충분하던 차에 아예 기관차거점과 화차중계 등을 모아 지금의 동대구역으로 정비한 전례가 있습니다. 좀 류는 다르지만 성동역 폐지도 청량리로의 통합정비 차원에서 이루어진 셈이라면 셈이고.
다만, 이후 KTX개통으로 용산과 서울의 분화가 이루어지듯이, 철도망이 확장되고 물리적으로 한 역에서 모든걸 처리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차라리 프랑스 처럼 방면별로 터미널을 지어두고, 이걸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게 사실 차라리 나을수도 있기는 합니다. 물론 환승객에게는 불편이 생기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과밀로 인해 불편과 불경제가 생기는 상황보다는 낫달까. 결국 철도가 얼마나 발전했는가, 또 수송량이나 그 밀도는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방향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게 중앙역의 입지와 위상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